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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100년사

영국이 만든 판을 일본이 가져가고, 한국이 뒤집고, 중국이 가져간 100년

2026년 여름, 한국 조선업 기사 제목이 서로 어긋났어요. 한쪽은 '8월 한 달 수주 점유율이 한국 7%, 중국 85%'라고 했고, 다른 쪽은 '1~8월 누계로 보면 한국 수주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55% 늘었다'고 했어요. 어느 쪽이 틀린 걸까요. 둘 다 맞아요. 하나는 한 달을 재고 하나는 여덟 달을 재거든요.

누계로 보면 한국의 몫이 내려간 건 한국이 덜 받아서가 아니라 중국이 더 많이 받아서예요. 같은 기간 중국의 수주량은 95% 늘었거든요. 게다가 배를 세는 자는 한 종류가 아니에요. 그해 새로 계약한 양, 그해 실제로 만들어 넘긴 양, 계약만 해 두고 아직 못 만든 양. 배는 계약에서 인도까지 보통 2~3년이 걸려서 이 셋은 늘 어긋나요. 어느 자를 대느냐에 따라 '세계 1위 조선국'의 이름이 바뀌어요.

이 어긋남이 조선업이라는 산업의 성격이에요. 일감과 배값이 크게 오르내리고, 어느 나라도 이 산업을 시장에만 맡겨 둔 적이 없어요. 그리고 지난 100여 년 동안 주도권이 세 번 넘어갔어요. 그런데 그 판을 처음 만든 나라는, 지금 세계 상선 건조 순위에서 이름을 찾기 어려워요.

한눈에 보는 연표

영국

  • 1890년대 영국이 세계 선박 진수 톤수의 약 80%를 만들다
  • 1930 NSS 설립 — 조선소를 사들여 부수기 시작하다
  • 1947 전후 특수의 정점, 이후 10년간 세계만 300% 커지다

일본

  • 1951 미국 선주가 구레 조선소를 빌려 용접 블록 건조를 심다
  • 1956 일본이 영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상선 건조국이 되다
  • 1970 일본의 세계 조선 생산 점유율이 50%에 육박하다

세계

  • 1973 세계 발주 사상 최대, 그해 10월 1차 오일쇼크

한국

  • 1974 울산, 조선소 준공과 1호선 인도를 함께 해내다
  • 2000 한국이 건조량 기준 세계 1위에 처음 오르다

중국

  • 2010 중국이 건조량 기준 세계 1위에 오르다
  • 2024 수주량 70.6%, 건조량 53.3% — 자에 따라 갈린 해
  • 2026 1~8월 수주 점유율 중국 76%, 한국 16%

배를 세는 자가 세 개인 이유

배 한 척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서 보통 2~3년 뒤에 바다에 떠요. 그래서 조선업에는 서로 다른 세 개의 자가 있어요.

수주량은 그해에 새로 계약한 배의 양이에요. 건조량은 그해에 다 만들어 주인에게 넘긴 양이고요. 수주잔량은 계약은 했는데 아직 만들지 않은 일감이에요. 앞으로 몇 년치 일이 쌓여 있는지를 재는 값이죠. 셋 중 무엇을 고르느냐에 따라 '세계 1위'가 다른 나라를 가리킬 수 있어요. 실제로 2014년에는 수주에서 중국이 앞섰는데, 실제로 배를 만들어 넘긴 실적은 한국이 1위였어요.

2024년은 더 극적이에요. 그해 중국의 점유율은 수주량 기준 70.6%, 건조량 기준 53.3%, 수주잔량 기준 58.1%였어요. 셋 다 2024년의 사실이에요. 뉴스에서 '중국이 세계 조선의 70%'라는 문장을 볼 때 어느 자로 잰 값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반쯤은 틀린 문장을 읽는 셈이에요.

단위도 하나가 아니에요. GT는 배 안의 공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재고, DWT는 그 배가 얼마나 실을 수 있는지를 재요. 1979년에 나온 역사상 가장 큰 배는 56만 4,763 DWT인데, 같은 배가 26만 941 GT이기도 해요. 둘 다 '톤'이라고 부르지만 재는 대상이 달라요. 그래서 OECD가 1977년에 CGT라는 자를 나라별 비교의 표준으로 정했어요. 2007년에는 계산식을 손봤고요. CGT는 무게가 아니라 그 배를 만드는 데 드는 '일의 양'을 환산한 값이에요. 같은 크기라도 유조선보다 LNG운반선이 손이 훨씬 많이 가니까, 크기에 종류별 계수를 곱해서 구해요.

마지막 함정이 하나 더 있어요. 이 숫자들은 나중에 바뀝니다. 뒤늦게 확인된 계약이 반영되면 통계 기관이 과거 연도의 발주량을 위로 고쳐 잡거든요. 2024년 세계 발주량은 2025년 초에 6,581만 CGT로 발표됐다가 1년 뒤 7,678만 CGT가 됐어요. 2019년치도 2,529만 CGT에서 2,910만 CGT로 커졌고요. 그래서 '그해 뉴스에 나온 점유율'과 '지금 계산한 점유율'이 달라요. 한국이 몇 년 연속 세계 1위였는지조차 자료마다 갈리는데, 같은 시기에 나온 국내 보도가 '3년째 1위'와 '2년 만의 1위 복귀'로 엇갈린 적도 있어요.

배 한 척의 계약에서 인도까지, 그 위에 놓인 세 개의 자 수주량 계약한 날 건조량 인도한 날 2~3년 수주잔량

여기서 기억할 것 '몇 %'보다 '어느 자로 잰, 언제의 몇 %'가 먼저예요. 뒤에 나올 순위 다툼이 전부 이 위에서 벌어져요.

세계 배의 80%를 만들던 나라가 조선소를 부수기 시작했을 때

1890년대의 조선업은 경쟁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산업이었어요. 그 무렵 세계에서 물에 띄워지는 배의 약 80%를 영국이 만들었거든요. 1900년 기준으로 영국 조선소의 생산성은 미국의 2배, 독일의 3배, 프랑스의 6배였어요. 조선은 '영국이 잘하는 산업'이 아니라 사실상 '영국이 하는 산업'이었어요.

균열은 생각보다 일찍 왔어요. 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3년, 영국의 점유율은 이미 80%에서 60%대로 내려와 있었어요. 자료에 따라 오르내리는데, 1910~20년대 내내 55~65% 사이였다고 보는 편이 안전해요. 그래도 절대량으로는 나머지 세계를 전부 합친 것보다 많이 만들었으니, 안에서는 이걸 쇠퇴라고 부르기 어려웠을 거예요. 정점과 내리막의 시작이 같은 시기에 겹쳐 있었어요.

1929년 대공황이 오자 조선은 가장 먼저 얼어붙는 산업 중 하나였어요. 배는 몇 년 뒤의 무역을 내다보고 주문하는 물건이라, 앞이 안 보이면 주문 자체가 사라지거든요. 1929년 영국 조선 노동자의 실업률은 40%를 넘었고, 1930년에는 조선소 다섯 곳 중 한 곳만 일감을 받았어요. 1924년에도 60% 남짓이던 점유율은 1929년 50%, 1930년대 중반에는 40% 아래로 내려갔어요.

영국이 꺼낸 답은 지금 보면 서늘해요. 1930년 '내셔널 십빌더스 시큐리티(NSS)'라는 기구를 세웠어요. 제임스 리스고 경이 의장을 맡은 이 조직이 한 일은 어려운 조선소를 사들여 아예 부수는 것이었어요. 1938년까지 216개의 선대(船臺, 배를 짓는 자리)가 철거됐어요. 남아도는 설비를 줄여 살아남은 조선소를 살리자는 논리였고, 그때 설비가 너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에요.

다만 부순 것은 설비만이 아니었어요. NSS가 사들여 문을 닫은 파머스 조선소가 있던 잉글랜드 북동부 재로에서는, 1936년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런던까지 300여 km를 걸어갔어요. 재로 행진이라고 불리는 일이에요. 조선소 한 곳이 닫힌다는 것이 도시 하나가 무너지는 일이라는 걸 영국은 이때 배웠어요.

NSS를 두고는 지금도 평가가 갈려요. 정부가 만든 감산 카르텔이었다는 쪽과, 그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구조조정이었다는 쪽이 있어요. 확실한 건 하나예요. 설비를 없애는 데는 몇 해면 되고, 되살리는 일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이 이야기 내내 되풀이되는 비대칭이 여기서 처음 나와요. 도크를 부수는 일과 다시 짓는 일은 대칭이 아니에요.

영국은 줄어들어서가 아니라 늘리지 못해서 밀렸어요

1947년, 영국은 다시 한번 세계 나머지를 전부 합친 것보다 많은 배를 만들었어요. 전쟁으로 배가 워낙 많이 가라앉아,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시기였죠. 그런데 이후 10년 동안 영국의 생산은 18% 느는 데 그쳤고, 같은 기간 세계 생산은 300% 늘었어요. 영국은 줄어들어서 1위를 잃은 게 아니라, 남들만큼 늘리지 못해서 잃었어요.

왜 늘리지 못했을까요. 이유를 하나로 줄이면 반드시 틀려요.

먼저 공법이었어요. 이 시기 세계 조선은 리벳을 두들겨 박는 방식에서 용접으로, 배마다 새로 설계하는 방식에서 표준선을 반복해 짓는 방식으로 넘어가고 있었어요. 영국 조선소에는 1954년에 '선주들은 용접한 상자를 원하지 않는다, 리벳을 많이 박아 주기를 기대한다'는 말이 돌았어요. 1950년부터 1980년 사이에 나온 주요 혁신 14개 가운데 영국에서 먼저 널리 쓰인 것은 3개뿐이었어요. 그 직전 150년 동안은 15개 중 13개가 영국에서 시작된 나라였는데도요.

설비 투자도 미뤄졌어요. 앞 장에서 본 것처럼 선대는 이미 많이 없어진 상태였고요. 여기에 노사관계가 겹쳤어요. 1966년 영국 정부가 낸 게디스 보고서는 영국 조선소가 경쟁국보다 평균 20% 비싼 값을 받으면서도 적자를 내고 있고, 생산관리는 '원시적'이며, 노조의 직종 구분이 지나쳐 전구 하나를 갈려면 인부·리거·전기공 세 사람이 필요하다고 적었어요.

정부는 계속 개입했어요. 1967년 조선조사법으로 27개 업체를 12개 그룹으로 묶었고, 1967년부터 1972년까지 1억 6,000만 파운드의 보조금과 대출을 넣었어요. 그래도 안 되자 1977년 9월 1일 아예 국유화했어요. 남아 있던 조선소들을 한 회사로 묶은 '브리티시 십빌더스'는 영국 상선 건조능력의 97%, 군함 건조능력의 100%를 가졌고 종업원이 8만 7,000명이었어요.

그사이 1971년에는 어퍼클라이드조선이 도산했어요. 정부가 600만 파운드의 운전자금 대출을 거부하자, 노동자들은 파업 대신 조선소를 지키고 남은 배를 계속 만드는 '워크인'을 택했어요. 지미 리드는 '난동도, 파괴도, 술판도 없다'고 못 박았고, 글래스고 시위에는 8만 명이 모였어요. 1972년 2월 정부가 물러섰어요.

결말은 빨랐어요. 1975년부터 1985년 사이 영국의 생산은 90% 줄었고 세계 점유율은 3.6%에서 1% 아래로 내려갔어요. 브리티시 십빌더스의 종업원은 1987년 5,000명이 됐고, 1989년 마지막 야드가 문을 닫으며 국유 조선의 상선 건조는 끝났어요. 민간에 남은 조선소도 오래 버티지 못했어요. 타이태닉을 만든 벨파스트의 할랜드앤울프는 2024년 9월 두 번째로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25년 1월 스페인 국영기업 나반티아에 넘어갔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밀려나는 쪽은 한 가지 이유로 밀려나지 않아요. 공법·설비 투자·노사관계가 함께 어긋났어요.

미국인이 일본 해군의 도크를 빌린 날

1948년 시점에 일본이 만든 배의 20%만이 용접으로 붙인 것이었어요. 나머지는 리벳을 두들겨 박는 방식이었죠. 영국을 흉볼 처지가 아니었어요.

일본 정부는 1947년부터 계획조선이라는 제도를 돌리고 있었어요. 정부가 어느 회사에 어떤 배를 몇 척 만들라고 물량과 자금을 배정하는 방식이에요. 조선에 정부가 들어간 게 요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서 이미 그랬어요. 1950년에는 한국전쟁 특수로 현금이 들어왔고, 같은 해 W. 에드워즈 데밍이 일본에서 통계적 품질관리 강의를 35회 열었어요.

그런데 판을 바꾼 일은 좀 엉뚱한 데서 왔어요. 1951년, 미국 선주 대니얼 K. 루드윅의 회사가 옛 일본 해군의 구레 조선소를 10년간 빌렸어요. 전함 야마토를 만들던 그 도크예요. 루드윅이 가져온 것은 2차대전 때 미국이 리버티선을 찍어 내며 쓰던 용접 블록 건조였어요.

배를 바닥부터 순서대로 쌓아 올리는 대신, 여러 덩어리로 나눠 따로 만든 뒤 도크에서 붙이는 방식이에요. 덩어리 상태일 때 배관과 전선까지 미리 넣어 두면 훨씬 빨라져요. 여기서 짚고 갈 게 있어요. 이 방식을 발명한 것은 미국이에요. 일본이 한 일은 그것을 군함이 아니라 상선에 적용해 체계화한 것이었어요. 항공기 설계 출신인 신토 히사시가 구레의 수석 엔지니어로 이 방식을 흡수했고, 구레를 거쳐 간 4,000~5,000명의 기술자가 다른 조선소로 흩어졌어요.

결과는 숫자로 나왔어요. 1949년부터 1956년 사이 배 1톤을 만드는 데 드는 노동시간이 절반 가까이 줄었고, 한 척을 물에 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8.5개월에서 6개월로 짧아졌어요. 그리고 1956년, 일본이 영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상선 건조국이 됐어요. 주도권이 처음 넘어간 거예요.

운도 따랐어요. 같은 1956년 수에즈 운하가 막히면서 아프리카를 빙 돌아가야 하는 초대형 유조선 수요가 터졌거든요. 1958년에는 바로 그 구레 조선소에서 10만 DWT를 넘는 최초의 초대형 유조선 '유니버스 아폴로'가 진수됐어요. 배가 클수록 기름 1톤을 나르는 값이 싸진다는 게 확인되면서, 이후 20년간 세계 조선은 '더 큰 유조선'을 향해 달렸어요.

일본은 계속 빨라졌어요. 1958년부터 1964년 사이 총톤당 노동시간이 60% 줄고, 용량 1톤을 만드는 데 드는 강재가 36% 줄었어요. 1970년 무렵 일본이 만든 배는 세계 조선 생산의 절반에 육박했어요. 1940년대 말 화물선 한 척을 띄우는 데 10개월이 걸리던 것이 3개월로 줄었고, 그 배는 10배 커져 있었어요.

배를 통째로 쌓아 올리던 방식과 덩어리를 따로 만들어 붙이는 블록 건조 비교 한 척을 통째로 옛 방식 8.5개월 선수·기관실·선미 블록 건조 6개월

여기서 기억할 것 발명한 쪽이 아니라 그것을 상선으로 옮겨 심은 쪽이 가져갔어요. 기술이 넘어가는 일은 늘 이렇게 조용히 일어나요.

세계가 절벽으로 걸어가던 해에 도크를 판 나라

1967년, 한국은 조선공업진흥법을 만들었어요. 1972년부터 1976년까지의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서는 조선을 수출 주력 산업으로 지정했고요. 배를 만들어 본 적이 거의 없는 나라가 대형 조선소를 짓기로 한 거예요.

1971년 정주영이 런던으로 갔어요. 영국의 A&P 애플도어, 스콧리스고와 기술제휴를 맺고 바클레이즈 은행에서 조선소 건설 차관을 얻어 왔어요. 한국 조선업의 출발선에 영국이 서 있었다는 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대목이에요.

이 장면에는 유명한 일화가 붙어 있어요. 애플도어 회장 찰스 롱바텀에게 500원 지폐의 거북선을 보이며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 앞서 철갑선을 만들었다'고 설득했다는 이야기예요. 회사 공식 연혁에도 실려 있지만 상대편 기록 같은 1차 자료로 확인된 것은 아니라서, 이 산업에서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 정도로 두는 편이 정확해요. 덧붙이면 1971년에 유통되던 500원권은 1966년에 나온 것이고, 그 뒷면 거북선은 민화를 본떠 돛이 없었어요. 차관을 실제로 성사시킨 것은 기술제휴 계약과, 그해 그리스 선주 조지 리바노스가 실제로 발주한 26만 DWT 유조선 2척이었어요.

순서가 거꾸로였어요. 보통은 조선소를 지은 뒤 배를 수주하는데, 여기서는 배를 먼저 팔고 조선소를 지었어요. 1972년 3월 울산 미포만에서 기공식이 열렸고, 조선소를 짓는 일과 그 배를 만드는 일을 동시에 해야 했어요. 조선소는 2년 3개월 만에 완공됐어요. 1974년, 1호선인 26만 DWT급 유조선 '애틀랜틱 배런'이 인도됐어요.

같은 시기에 남쪽에서도 도크가 파이고 있었어요. 1973년 거제 옥포에서 대한조선공사가 대형 조선소를 착공했어요. 이 조선소가 1978년 대우그룹에 넘어가고 1981년 종합준공되면서 뒷날의 대우조선해양이 되고, 2023년 한화에 인수돼 한화오션이 됩니다. 삼성도 곧이어 조선사를 인수해 거제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런데 바로 그 1973년에, 세계 조선은 절벽 앞에 서 있었어요. 그해 세계 신조선 발주는 7,280만 GT로 사상 최대를 찍었어요. 그리고 10월, 1차 오일쇼크가 왔어요. 2년 뒤인 1975년 발주는 1,380만 GT였어요. 약 81%가 사라진 거예요.

무서운 건 그게 당장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이미 계약된 배들은 2~3년 뒤에야 인도되니까, 조선소 안에서는 한동안 호황처럼 보였어요. 절벽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발밑은 평평했던 거죠. 현대의 1호선도 인도 시점은 이미 오일쇼크 이후였고, 원 발주처와의 분쟁 끝에 배 일부를 자체 해운사가 떠안아야 했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남들이 절벽을 발견하던 해에 도크를 판 선택 — 그 보상이 무엇이었는지는 다음 장에서 나옵니다.

일본이 도크를 부수던 때 도크를 판 나라 — 한국이 1위가 되기까지

1975년 1,800만 GT였던 일본의 연간 진수량은 1979년 430만 GT가 됐어요. 4년 만에 76%가 사라진 거예요. 신규 수주는 더 심해서, 1973년 약 3,500만 GT에서 1978년 365만 GT로 거의 90%가 없어졌어요.

일본 정부의 대응은 빨랐고, 방향은 앞서 영국이 갔던 길과 같았어요. 1978년 8월 조선을 '구조불황업종'으로 지정하고, 5,000 GT 이상의 배를 지을 수 있는 설비의 약 35%를 아예 없애기로 했어요. 1979년부터 61개 업체가 참여해 1980년 3월까지 감축을 끝냈어요. 하청과 관련 산업까지 포함한 조선 인력은 1974년 36만 1,000명에서 1979년 22만 8,000명으로 36.8% 줄었고요. 일본이 도크를 부수던 바로 그 몇 해에, 한국은 도크를 파고 있었어요.

이 시기의 마지막 장면이 상징적이에요. 1979년 스미토모중공업이 훗날 '시와이즈 자이언트'로 불리는 배를 완성했어요. 56만 4,763 DWT,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큰 배예요. 그런데 그 배가 나온 해가, 그런 배를 필요로 하던 시대가 끝난 해였어요.

한국의 도크는 그 뒤에 채워졌어요. 1981년 옥포 조선소가 종합준공됐고, 삼성은 1979년 1도크와 1981년 2도크를 완성했어요. 현대는 1983년 세계 최대 조선사가 됐고요. 남들이 설비를 없앤 자리에 거의 유일하게 새 설비가 남아 있었다는 것이, 시장이 돌아왔을 때 그대로 몫이 됐어요.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게 있어요. 한국이 값만 싸서 이긴 것은 아니에요. 값이 쌌던 것도 사실이지만, 결정적이었던 건 큰 배를 지을 수 있는 새 도크가 그때 세계에 별로 없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이 산업의 어느 나라도 이걸 혼자 힘으로 하지 않았어요. 한국은 정책금융과 산업은행 출자로 조선소를 떠받쳤어요. 일본은 계획조선으로, 영국은 보조금 끝에 국유화로 그렇게 했고요.

한국이 세계 1위 명단에 처음 올라온 건 1999년이에요. 수주량 기준이었어요. 이듬해인 2000년에는 건조량 기준으로도 1위가 됐고요. 1년 차이가 나는 이유는 앞에서 본 그대로, 계약과 인도 사이에 시차가 있기 때문이에요. 로이드 통계를 인용한 당시 보도를 보면 건조량 점유율이 1999년 한국 36.8% 대 일본 42.6%에서 2000년 한국 40.6% 대 일본 38.9%로 뒤집혔어요. 다만 추세선이 교차한 시점을 2002년으로 보는 집계도 있어요. '몇 년도에 추월했다'는 문장조차 기준을 밝혀야 성립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주도권이 두 번째로 넘어간 자리예요. 넘어간 이유가 기술만이 아니었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 두면 좋아요.

중국은 어떻게 올라왔을까 — 그동안 세계 조선은 줄었어요

중국의 출발점은 1975년, 5,000 DWT도 안 되는 작은 배를 수출한 일이었어요. 1982년에는 중국선박공업총공사(CSSC)를 세워 26개 조선소와 66개 공장, 약 30만 명을 하나로 묶었어요. 그때 중국의 선박 수출 순위는 세계 16위였어요.

하필 그 시기 배값은 바닥이었어요.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는 1980년부터 1986년 사이 140에서 90으로 35.7% 떨어졌어요. 이 지수를 길게 보면 조선업의 성격이 드러나요. 오르는 기간은 짧고 가파르며, 내리는 기간은 길고 완만해요. 호황을 보고 도크를 지으면 도크가 완성될 무렵 불황이 와 있는 산업이라는 뜻이에요.

중국은 천천히 올라왔어요. 1992년 세계 3위 상선 건조국이 됐고, 1996년에는 새로 만드는 상선의 85%가 수출용이었어요. 1999년에는 CSSC를 CSSC와 CSIC 둘로 쪼개 서로 경쟁시켰고, 기술이전을 조건으로 외국 기업과의 합작을 밀었어요. 2002년 주룽지 총리는 '2015년까지 세계 제일의 조선국이 되겠다'고 공언했어요. 2000년 250만 DWT였던 건조량은 2005년 거의 1,000만 DWT가 됐고요.

돈도 들어갔어요. 학술 연구는 중국 정부가 2006년부터 2013년 사이 조선업에 약 900억 달러를 보조금으로 넣었고, 이게 배 한 척 원가의 15~20%에 해당한다고 추정해요. 추정치라는 점, 그리고 정부 지원이 중국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함께 봐야 해요. 일본은 계획조선으로, 영국은 보조금 끝에 국유화로, 한국은 정책금융과 공적자금으로 자국 조선소를 떠받쳐 왔어요. 이 산업은 어느 나라에서도 순수한 민간 산업이었던 적이 없어요.

넘어간 순간은 생각보다 밋밋했어요. 중국이 수주잔량에서 한국을 처음 넘어선 것은 2009년 11월인데, 그때 격차는 0.9%포인트였어요. 같은 2009년 수주량 기준으로 세계 1위에 올랐고, 2010년에는 건조량 기준으로도 1위가 됐어요. 1년 뒤인 2010년 10월 초에는 수주잔량이 중국 36.4% 대 한국 32.4%로 벌어졌고요. 단숨에 추월당한 게 아니라 몇 해에 걸친 잠식이었어요.

여기에 잘 언급되지 않는 배경이 하나 있어요. 중국이 커지는 동안 세계 조선 자체는 줄었어요. 2010년부터 2020년 사이 세계 건조량은 45% 줄었고, '가동 중'으로 분류되는 조선소 수는 3분의 2가 사라졌어요. 중국 안에서도 2010년부터 2019년 사이 가동 조선소가 70% 줄었고요. 중국의 점유율 상승분 가운데 상당 부분은 남들이 문을 닫아서 생긴 몫이에요.

2019년 11월 26일, 중국은 20년 전 경쟁을 붙이겠다며 쪼갰던 CSSC와 CSIC를 다시 합쳤어요. 자산 1,100억 달러, 세계 점유율 약 20%의 단일 조선 그룹이 만들어졌어요.

2010년에서 2020년 사이 세계 건조량이 45% 줄어드는 동안 중국의 몫이 커진 과정 세계 건조량 45% 감소 중국 중국 2010년 2020년 전체가 줄면 같은 양도 더 큰 몫이 된다

여기서 기억할 것 세 번째 이동이에요. 점유율은 내가 커져서만 오르는 게 아니라, 옆이 사라져도 올라요.

무너졌다가 돌아온 한국, 그런데 무엇이 돌아왔을까

2014년은 이 이야기에서 꼭 짚어야 할 해예요. 그해 한국은 건조량, 그러니까 실제로 만들어 넘긴 실적에서 중국을 다시 앞질렀어요. 한국 1,210만 CGT, 중국 약 1,110만 CGT였어요. 초대형 컨테이너선 인도량의 70%, LNG운반선 인도량의 거의 90%가 한국에서 나왔고요. 그런데 같은 해 수주와 수주잔량에서는 중국이 앞서 있었어요. 같은 해에 '중국 1위'와 '한국 1위'가 둘 다 사실일 수 있다는 것, 이게 이 산업의 기본값이에요.

그리고 이듬해부터 한국 조선이 무너졌어요. 대우조선해양은 2015년과 2016년 2년간 약 6조 원의 손실을 냈고, 2017년 2조 9,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받았어요. 조선 인력은 2014년 12월 20만 3,441명에서 2021년 12월 9만 3,133명으로 절반 아래가 됐어요. 중형 조선소도 여럿 정리됐고요. 앞서 영국과 일본이 지나간 길을 한국도 걸었어요.

회복은 비싼 배에서 왔어요. 산업통상자원부가 클락슨 자료로 발표한 2019년 실적을 보면, 세계 발주 2,529만 CGT 가운데 한국이 943만 CGT로 37.3%를 가져가 1위였어요. 중국은 33.8%, 일본은 13%였고요. 2020년에는 세계 발주 1,924만 CGT 중 한국이 819만 CGT, 43%를 수주했어요. 대형 LNG운반선 49척 중 36척, VLCC(챕터 4에서 본 그 초대형 원유운반선) 41척 중 35척을 가져간 결과예요.

다만 이 시기를 '몇 년 연속 1위'로 정리하면 곤란해요. 같은 2019년에 수주잔량 1위는 중국이었고(2,693만 CGT), 한국은 2,260만 CGT로 2위였어요. 게다가 앞에서 본 사후 수정 때문에 2019년 세계 발주량은 발표 당시 2,529만 CGT였다가 나중에 2,910만 CGT가 됐어요. 그래서 같은 시기 국내 보도가 '3년째 1위'와 '2년 만의 1위 복귀'로 갈렸어요. 연속 기록은 이 산업에서 가장 확인하기 어려운 숫자 중 하나예요.

2019년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며 지주회사 한국조선해양을 세웠는데, EU 집행위원회가 LNG운반선 시장 독과점을 이유로 이를 불허했어요(결정 시점은 2021년 말에서 2022년 초 사이로 자료마다 다르게 적혀 있어요). 결국 2023년 한화가 인수해 한화오션이 됐어요. 세계 LNG운반선을 사실상 한국 몇 곳이 만든다는 사실이, 그 나라 안의 합병을 막는 근거가 된 셈이에요.

돌아온 것과 돌아오지 않은 것은 나눠 볼 필요가 있어요. 조선업계 합계 영업이익은 2021년 4조 7,009억 원 적자에서 2024년 2조 1,747억 원 흑자로 돌아섰어요. 인력도 2024년 12월 12만 5,636명으로 회복됐고요. 하지만 예전의 20만 명은 아니에요. 그사이 기능인력의 하청 비중은 2020년 67%에서 2024년 74%로 올랐고, 전체 인력의 약 20%가 외국 인력이에요. 그리고 2024년 한 해 이 산업에서 20건의 산업재해로 24명이 숨졌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일감은 돌아왔는데 일하는 사람의 구성은 달라졌어요. 호황을 말할 때 같이 놓아야 하는 대목이에요.

2026년의 조선 기사를 읽는 법

2024년 한 해로 지금의 판을 먼저 볼게요. 세계 신규 수주 6,581만 CGT 가운데 중국이 4,645만 CGT로 70.6%를 가져갔어요. 한국은 1,098만 CGT로 16.7%, 일본은 324만 CGT로 4.9%였고요. 그런데 같은 해 실제로 만들어 인도한 건조량 점유율은 중국 53.3%, 한국 27.9%, 일본 12.0%였어요. 자를 바꾸면 격차가 절반으로 줄어요. 수주잔량 기준으로는 중국 58.1%, 한국 23.8%, 일본 8.2%였고요. 참고로 이 6,581만 CGT는 2025년 초 발표치예요. 1년 뒤 집계에서는 7,678만 CGT로 커졌고, 총량이 바뀌면 그 위에서 계산한 점유율도 흔들려요.

일본을 두고 '끝났다'고 쓰기 쉬운 자리가 여기예요. 수주량 점유율이 유럽연합(6%)에도 뒤진 한 자릿수니까요. 같은 해 같은 지표가 집계에 따라 4%로도 4.9%로도 적히는데, 어느 쪽이든 EU보다 아래인 건 같아요. 미쓰비시조선·미쓰이조선·사세보중공업에 이어 스미토모중공업까지 상선 건조에서 물러난 결과예요. 하지만 같은 해 건조량 기준으로 일본은 12.0%로 여전히 3위였어요. 지표 하나로 한 나라를 지우면 안 돼요.

해마다 크게 움직인다는 점도 봐야 해요. 2025년 연간 확정 집계로 세계 발주는 5,643만 CGT였고 중국 63%, 한국 21%였어요. 한국의 수주량 자체는 전년보다 8% 늘었고 중국은 35% 줄었어요. 그런데 2026년 1~8월 누계로 보면 다시 중국 76%, 한국 16%예요.

여기서 가장 오해하기 쉬운 게 나와요. 점유율이 내려갔다는 말과 물량이 줄었다는 말은 다른 말이에요. 2026년 1~8월 한국의 수주량 자체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55% 늘었어요. 다만 중국이 95% 늘어서 몫이 내려간 거예요. 한 달만 떼어 보면 더 흔들려요. 2026년 8월 한국의 월간 점유율은 7%로 그해 최저였는데, 석 달 전인 5월에는 31%였어요. 한 달 숫자를 그해의 실력으로 읽으면 반드시 틀려요.

배값은 또 다른 방향을 가리켜요.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는 2026년 8월 말 186.34로 고점 부근이에요. LNG운반선 한 척이 2억 4,850만 달러 수준이고요. 한국의 수주 점유율은 내려가는데 배값은 높은, 방향이 엇갈리는 국면이에요. 2026년 상반기 척당 평균 수주 규모는 한국 3만 8,000 CGT, 중국 2만 6,000 CGT로, 한국이 더 크고 비싼 배를 골라 받는 구조는 유지됐어요.

그 구조의 다른 얼굴이 집중이에요. 2024년 말 기준 한국 조선소 수주잔량의 60.7%가 가스선이고, 벌크선은 0%예요. 강점이자 위험이에요. 중국 후둥중화의 LNG운반선 연간 인도는 2023년 6척, 2024년 7척, 2025년 11척으로 늘었고, 시리즈 1호선 기준 건조 기간이 24~30개월까지 짧아졌어요. 한국이 30~33개월이니 이제 차이가 크지 않아요. 다만 중국의 LNG운반선 실적과 잔고는 아직 자국 자본이 낀 프로젝트에 몰려 있어서, 열린 시장에서의 경쟁은 이제부터예요.

마지막은 손님 이야기예요. 2024년 기준 중국 해운사가 발주한 물량의 91.3%가 중국 조선소로 갔어요. 한국은 24.3%였고요. 중국 조선의 힘 가운데 상당 부분은 거대한 자국 손님에서 나오고, 한국 조선의 실적은 거의 전부가 수출이에요.

2026년 한국의 월별 수주 점유율(CGT 기준)과 1~8월 누계 점유율 비교 한국의 월별 수주 점유율 31% 1~8월 누계 16% 7% 1월 8월

여기서 기억할 것 조선 기사 한 줄을 읽을 때 필요한 건 여섯 가지예요. 지표, 기간, 물량과 점유율의 차이, 배값, 선종, 그리고 손님.

다음 판이 열릴 때 무엇을 지켜볼 것인가

예언은 이 글이 할 일이 아니에요. 대신 지금까지 본 규칙에 비춰, 어디를 지켜보면 판이 움직이는 걸 먼저 알아챌 수 있는지 네 자리만 짚을게요.

하나는 미국이에요. 2025년 10월 14일 미국 무역대표부가 중국에서 만들었거나 중국이 소유·운영하는 선박에 입항 수수료를 물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11월 10일부터 1년간, 그러니까 2026년 11월 9일까지 시행이 유예됐어요. 시장은 이 조치 하나로 발주처를 바꿨다가 다시 관망으로 돌아갔고요. 유예가 끝나는 날 무슨 일이 생길지는 이 글이 답할 수 없어요. 다만 이 산업의 지도를 정치가 다시 그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확인됐어요.

같은 줄기에서 한국은 미국에 조선소를 짓고 있어요. 한화가 2024년 12월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를 1억 달러에 인수했고, 2025년 8월 50억 달러 추가 투자와 함께 연간 건조 능력을 2척 미만에서 최대 20척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어요. 첫 MR탱커(중형 석유제품운반선) 인도 목표는 2029년 초예요. 2026년 7월 23일에는 워싱턴에서 한미 조선협력센터가 문을 열며 1,500억 달러 규모의 MASGA 프로젝트가 출범했고요. 여기서 조심할 게 있어요. 1억 달러는 이미 집행된 인수 대금이지만, 50억 달러는 발표한 계획이고 1,500억 달러는 약속한 규모예요. 성격이 다른 세 숫자를 한 줄에 놓으면 안 돼요.

다음은 연료예요. 국제해사기구가 2023년 온실가스 감축 전략에서 2050년 무렵 국제 해운의 온실가스 순배출을 0으로 만들겠다고 정했어요. 어떤 연료로 가는 배를 만들 것인가가 조선소의 다음 승부처가 된 거예요. 다만 표준이 정해진 건 아니에요. 2025년 말 기준 대체연료로 갈 수 있는 배의 세계 수주잔량은 1,942척인데, 메탄올 신규 발주는 2024년 149척에서 2025년 61척으로 줄고 LNG가 다시 주력이 됐어요. 어느 연료가 남을지는 아직 열려 있어요.

일본도 봐야 해요. 이마바리조선이 2위 JMU의 지분을 60%로 늘려 자회사로 편입하는 절차가 2026년 1월 6일 끝났어요. 일본 국토교통성은 2030년대 중반까지 자국 조선을 1~3개 그룹으로 묶는 로드맵을 내놨고요. 건조량 3위를 아직 쥔 나라가 마지막으로 몸을 합치는 중이에요.

그리고 아마 가장 중요한 자리, 사이클이에요. 클락슨 신조선가지수를 1980년부터 보면 오르내림이 여섯 국면 반복되는데, 상승기는 짧고 가파르며 하락기는 길고 완만해요. 지금은 고점 부근이고요.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둘게요. 주인이 바뀔 때마다 불황이었던 건 아니에요. 일본이 영국을 제친 1956년은 수에즈 운하가 막히며 초대형 유조선 수요가 터진 호황의 한복판이었거든요. 확실한 건 이쪽이에요. 값이 꺾이고 일감이 사라질 때 누가 도크를 지키고 누가 부수는지 — 영국도 일본도 그 자리에서 설비를 없앴고, 설비를 남겨 둔 쪽이 다음 호황의 몫을 가져갔어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요. 2025년 11월 HD현대중공업이 세계 최초로 5,000번째 선박을 인도했어요. 1974년 1호선 이후 51년 만이에요. 그 1호선을 만들 때 기술과 돈을 대준 나라의 상징적인 조선소는, 2025년 스페인 국영기업의 손에 넘어갔고요. 이 산업에서 자리는 그렇게 옮겨 다녔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맞히자는 게 아니라 지켜보자는 거예요. 미국의 규제, 연료 표준, 일본의 재편, 그리고 배값이 꺾이는 날이 그 자리예요.

🤔 흔한 오해

✕ 오해

중국이 세계 조선의 70%를 차지한다.

✓ 사실

2024년 '신규 수주량' 기준으로 70.6%예요. 같은 해 실제로 만들어 인도한 '건조량' 기준으로는 53.3%, '수주잔량' 기준으로는 58.1%였어요. 셋 다 2024년의 사실이고 자가 다를 뿐이에요. 게다가 해마다 크게 움직여요. 2025년 연간 수주 점유율은 63%로 내려왔다가 2026년 1~8월에는 76%로 다시 올라갔어요. '몇 %'를 말할 때는 어느 지표인지와 언제 기준인지를 함께 적어야 해요.

✕ 오해

한국 조선업은 중국에 밀려 무너지는 중이다.

✓ 사실

밀린 것은 '수주량 점유율'이에요. 2023년 20.4%, 2024년 16.7%, 2025년 21%, 2026년 1~8월 16%로 오르내려요. 반면 2024년 건조량 점유율은 27.9%로 2023년보다 올랐고, 조선업계 합계 영업이익은 2021년 4조 7,009억 원 적자에서 2024년 2조 1,747억 원 흑자로 돌아섰어요. 다만 수주잔량의 60% 이상이 가스선 한 종류에 몰려 있는 것, 그리고 중국 후둥중화의 LNG운반선 연간 인도가 2023년 6척에서 2025년 11척으로 늘고 건조 기간이 한국 수준까지 짧아진 것은 실제 위험이에요.

✕ 오해

정주영이 백사장 사진과 500원 지폐 한 장으로 조선소 차관을 따냈다.

✓ 사실

회사 공식 연혁에도 실린 일화지만, 차관을 성사시킨 실체는 A&P 애플도어·스콧리스고와의 기술제휴 계약과 그리스 선주 리바노스가 실제로 발주한 유조선 2척이었어요. 게다가 1971년에 유통되던 500원권은 1966년 발행분으로 앞면이 남대문이고 뒷면 거북선은 민화를 본떠 돛이 없었어요. 이순신 초상과 고증된 거북선이 들어간 500원권은 1973년 9월 1일에 나왔고요. 일화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지만, '지폐 한 장으로'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 오해

영국 조선업은 일본 때문에 망했다.

✓ 사실

일본이 영국을 추월한 것은 1956년이지만, 영국의 점유율은 그보다 수십 년 전부터 내려가고 있었어요. 1890년대 약 80%에서 1913년에는 60% 수준이 됐고, 1924년 60%에서 1929년 50%, 1930년대 중반에는 40% 아래로 내려갔어요. 1947년에도 영국은 세계 나머지를 합친 것보다 많이 만들었지만, 이후 10년간 영국 생산이 18% 늘 때 세계 생산은 300% 늘었어요. 줄어서가 아니라 늘리지 못해서 밀린 거예요.

✕ 오해

조선업에 보조금을 주는 나라는 중국뿐이다.

✓ 사실

중국이 2006년부터 2013년 사이 약 900억 달러를 투입했다는 추정이 있지만, 일본은 전후 계획조선 제도로 정부가 건조 자금과 물량을 배정했고, 영국은 1967년부터 1972년까지 1억 6,000만 파운드의 보조금과 대출을 넣은 뒤 1977년 아예 국유화했어요. 한국은 정책금융과 산업은행 출자로 조선소를 떠받쳤고 2017년에만 대우조선해양에 2조 9,000억 원이 들어갔어요. 방식과 시기가 다를 뿐이에요.

💡 그래서 한마디로

조선은 배 한 척에 2~3년이 걸려서 수주량·건조량·수주잔량이 늘 어긋나고, 그래서 '세계 1위'가 어느 자를 대느냐에 따라 다른 나라를 가리키는 산업이에요. 지난 100여 년 사이 주도권은 영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세 번 넘어갔어요. 밀려난 쪽은 대개 한 가지 이유가 아니라 공법·설비 투자·노사관계가 함께 어긋나면서 밀렸어요. 자리가 바뀐 순간이 늘 불황이었던 건 아니지만, 남들이 도크를 부술 때 도크를 지은 쪽이 다음 호황의 주인이 됐어요. 그리고 이 산업은 어느 나라에서도 순수한 민간 산업이었던 적이 없어요.

참고 자료

본문의 연도와 숫자는 아래 자료를 근거로 씁니다. 틀린 곳을 찾으시면 알려주세요.

  1. How the UK Lost Its Shipbuilding Industry · Construction Physics (Brian Potter) — 1890년대 점유율 약 80%, 1913년 60%, 1929년 조선 실업률 40% 초과, 1938년까지 선대 216개 철거, 1947~1957년 영국 +18% 대 세계 +300%, 1966년 게디스 보고서, 1975~1985년 생산 90% 감소
  2. National Shipbuilders Securities · Wikipedia — 1930년 설립과 제임스 리스고 경, 조선소를 사들여 철거한 방식, 파머스 폐쇄와 1936년 재로 행진의 배경
  3. Upper Clyde Shipbuilders · Wikipedia — 1971년 600만 파운드 대출 거부와 법정관리, 지미 리드의 워크인, 글래스고 시위 8만 명, 1972년 2월 정부 방침 선회
  4. British Shipbuilders · Wikipedia — 1977년 9월 1일 국유화, 상선 건조능력 97%·군함 100%, 종업원 8만 7,000명에서 1987년 5,000명, 1989년 마지막 조선소 폐쇄
  5. Harland & Wolff · Wikipedia — 타이태닉 건조, 2024년 9월 두 번째 법정관리, 2025년 1월 스페인 국영 나반티아 인수
  6. Japan and the Birth of Modern Shipbuilding · Construction Physics (Brian Potter) — 1947년 계획조선, 1948년 용접 건조 20%, 1950년 데밍 강의 35회, 1951년 루드윅의 구레 조선소 임차와 신토 히사시, 1956년 영국 추월, 1958년 유니버스 아폴로, 1970년 점유율 50% 근접
  7. The Shipbuilding Industry in the 1970s · GlobalSecurity.org — 세계 발주 1973년 7,280만 GT에서 1975년 1,380만 GT, 일본 진수량 1975년 1,800만 GT에서 1979년 430만 GT, 1978년 구조불황업종 지정과 설비 약 35% 폐기, 조선 인력 36만 1,000명에서 22만 8,000명
  8. Seawise Giant · Wikipedia — 1979년 스미토모중공업 건조, 56만 4,763 DWT·26만 941 GT, 2010년 해체
  9. Compensated gross tonnage · Wikipedia — CGT의 정의와 OECD의 1977년 표준화·2007년 산식 개정, GT·DWT와의 차이
  10. Founder Story / Heritage · HD현대중공업 공식 사이트 — 1971년 A&P 애플도어·스콧리스고 기술제휴와 바클레이즈 차관, 500원 지폐 일화에 대한 회사 공식 서술, 리바노스의 26만 DWT 2척 수주, 1972년 3월 기공과 1974년 애틀랜틱 배런 인도
  11. 재미있는 돈 이야기 —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 은행권과 주화의 변천 · 국제신문 · 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 1966년 발행 500원권의 뒷면 거북선은 돛이 없었고, 이순신 초상과 고증된 거북선이 들어간 500원권은 1973년 9월 1일 발행
  12. 거제 조선업 50년, 반세기의 역사를 돌아보다 · 거제신문 창간 35주년 특집 — 1967년 조선공업진흥법과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조선 수출주력산업 지정, 옥포 1973년 착공·1978년 대우 인수, 삼성의 1979년 1도크·1981년 2도크
  13. Hanwha Ocean · Wikipedia — 1973년 옥포 설립, 1978년 대우 인수, 1981년 준공, 2015~2016년 약 6조 원 손실과 2017년 2조 9,000억 원 공적자금, 2023년 한화오션으로 사명 변경
  14. HD Hyundai Heavy Industries · Wikipedia — 1983년 세계 최대 조선사 등극, 2019년 한국조선해양(KSOE) 설립과 대우조선해양 인수 추진, EU 경쟁당국의 불허, 2025년 11월 세계 최초 5,000번째 선박 인도
  15. 한국, 조선 수주량·건조량 세계 1위 (로이드 통계 인용) · 케미로커스(화학저널) — 건조량 점유율 한국 1999년 36.8%→2000년 40.6%, 일본 1999년 42.6%→2000년 38.9%
  16. How China Became the World's Biggest Shipbuilder · Construction Physics (Brian Potter) — 1975년 소형선 첫 수출, 1982년 CSSC 설립과 선박 수출 세계 16위, 1992년 세계 3위, 1996년 수출 비중 85%, 1999년 분할, 2002년 주룽지 선언, 2006~2013년 약 900억 달러 보조금 추정
  17. China overtakes Korea in shipbuilding · China Economic Review (클락슨리서치 인용) — 2009년 11월 수주잔량 첫 역전(격차 0.9%포인트), 2010년 10월 초 중국 36.4% 대 한국 32.4%
  18. Shipyard Output: Edging Up · Clarksons Research Insights — 2010~2020년 세계 건조량 45% 감소, 같은 기간 '가동 중' 조선소 수 3분의 2 감소
  19. China Approves Merger of CSSC and CSIC to Create World's Largest Shipbuilder · gCaptain / Baird Maritime — 2019년 11월 26일 재합병 승인, 자산 약 1,100억 달러·세계 점유율 약 20%
  20. Korea Tops China in Newbuilding Output · The Maritime Executive — 2014년 건조량 한국 1,210만 CGT로 중국 약 1,110만 CGT 추월, 초대형 컨테이너선 인도량의 70%와 LNG 부문의 약 90%를 한국이 담당
  21. 한국조선, 2년 연속 수주 세계 1위 · 한국해운신문 (산업통상자원부·클락슨리서치 인용) — 2019년 세계 발주 2,529만 CGT 중 한국 943만(37.3%)·중국 855만(33.8%)·일본 328만(13%), 수주잔량은 중국 2,693만 CGT 1위·한국 2,260만 CGT 2위
  22. 클락슨리서치, 한국 2020년 선박 수주 1위 · 가스신문 (클락슨리서치 인용) — 2020년 세계 발주 1,924만 CGT 중 한국 819만 CGT(43%), 대형 LNG운반선 49척 중 36척·VLCC 41척 중 35척. '2018년 이후 2년 만의 1위 복귀'라는 표현과 2019년 발주량의 사후 상향(2,529만→2,910만 CGT)
  23. 한국 조선산업의 현황과 당면 과제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게시 발표자료 (KOSHIPA·클락슨·금융감독원 자료 인용) — 2023·2024년 수주량·건조량·수주잔량 점유율, 한국의 첫 1위 연도(수주 1999년·건조 2000년), 수주잔량 선종별 비중(가스선 60.7%), 조선 인력 20만 3,441명→9만 3,133명→12만 5,636명과 하청 74%·외국 인력 약 20%, 자국발주 자국소화율 중국 91.3%·한국 24.3%, 신조선가지수 여섯 국면, 영업이익 2021년 -4조 7,009억→2024년 +2조 1,747억, 2024년 산재 20건 24명, 1967년 조선공업진흥법
  24. 日 조선, 4%의 시장점유율로 EU에도 뒤져 · 해양통신(오션프레스), 클락슨 인용 — CGT 기준 수주량 점유율에서 일본 4%로 EU(6%)에 뒤짐(국가별로는 여전히 3위), 미쓰비시·미쓰이·사세보에 이어 스미토모중공업도 상선 건조 철수
  25. Korean Shipbuilders Secure 18% of Orders Last Month… Annual Chinese Orders Decline · 아시아경제 영문판 (클락슨리서치 인용) — 2025년 연간 세계 발주 5,643만 CGT(중국 63%·한국 21%, 한국 +8%·중국 -35%), 연말 수주잔량 1억 7,391만 CGT, 2024년 발주가 7,678만 CGT로 사후 상향 수정된 사실
  26. 韓 조선 8월 수주 점유율 7%⋯中 85%로 격차 벌어져 · 아이뉴스24 (클락슨리서치 인용) — 2026년 1~8월 누계 세계 5,972만 CGT 중 중국 76%·한국 16%, 같은 기간 수주량은 한국 +55%·중국 +95%, 월별 점유율 널뛰기, 8월 말 수주잔량과 신조선가지수 186.34
  27. China extends lead in global shipbuilding as South Korea focuses on high-value vessels · AJU Press (클락슨리서치 인용) — 2026년 상반기 척당 평균 수주 규모 한국 3만 8,000 CGT 대 중국 2만 6,000 CGT, LNG운반선 신조선가 2억 4,850만 달러
  28. 한국 조선사의 LNG운반선 패권은 계속될까 — 후둥중화 분석 · 쉬핑뉴스넷 (iM증권 분석 인용) — 중국 후둥중화의 LNG선 연간 인도 2023년 6척→2024년 7척→2025년 11척, 건조 기간 24~30개월로 단축(한국 30~33개월)
  29. USTR Port Fee Suspension: What You Need to Know · Holland & Knight — 2025년 10월 14일 중국 건조·소유·운영 선박에 대한 입항 수수료 시행, 2025년 11월 10일부터 2026년 11월 9일까지 1년 유예
  30. Hanwha announces $5 billion Philly Shipyard investment / Hanwha closes $100 million Philly Shipyard acquisition · 한화그룹 보도자료 — 2024년 12월 1억 달러 인수 완료, 2025년 8월 50억 달러 추가 투자 발표, 연간 건조 능력 2척 미만→최대 20척 목표와 첫 MR탱커 2029년 초 인도 목표
  31. $150 Billion 'MASGA' Launched as Korea-US Shipbuilding Partnership Center Opens in the US · 아시아경제 영문판 (산업통상자원부 발표 인용) — 2026년 7월 23일 한미 조선협력센터 개소와 1,500억 달러 규모 MASGA 프로젝트 공식 출범
  32. 2023 IMO 온실가스 감축 전략 / 대체연료 선박 발주 동향 · IMO · DNV · Lloyd's Register — 2050년 무렵 국제 해운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 목표, 대체연료 대응 수주잔량 1,942척, 메탄올 발주 2024년 149척에서 2025년 61척으로 감소
  33. Imabari completes acquisition of Japan's second-largest shipbuilder · Splash247 · Baird Maritime — 2026년 1월 6일 이마바리조선의 JMU 지분 60% 확보 완료, 일본 국토교통성의 2030년대 중반 1~3개 그룹 통합 로드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