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읽는 데 약 30분
보험의 역사
커피하우스의 내기가 어떻게 국가의 제도가 됐나
오늘 아침에도 통장에서 돈이 조금 빠져나갔을 거예요. 자동차보험료, 건강보험료, 회사가 대신 떼어 간 고용보험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 돈은 그대로 사라져요. 그런데도 우리는 해마다 그 돈을 냅니다. 가만 보면 이상한 거래예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쪽이 좋은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낸 돈은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계약서를 펼치면 작은 글씨가 빽빽해요. 무엇을 담보하고 무엇은 담보하지 않는지, 얼마까지 주는지, 어떤 경우에는 한 푼도 주지 않는지. 그 글씨들은 누가, 왜 그렇게 써 놓은 걸까요. 그리고 왜 나는 내 집에는 화재보험을 들 수 있는데 옆집이 타는 쪽에는 들 수 없을까요.
이 규칙들은 국회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런던의 어느 커피하우스였고,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하던 일은 사실 내기에 훨씬 가까웠어요.
한눈에 보는 연표
고대·중세
- 133 로마 라누비움의 장례조합, 회비를 돌에 새기다
- 1347 제노바 공증 문서, 보험이 대출에서 떨어져 나오다
- 1601 잉글랜드 첫 보험법 — 손실을 다수에게 가볍게 흩다
커피하우스와 확률
- 1680년대 에드워드 로이드, 커피 대신 해운 소식을 팔다
- 1693 핼리, 브레슬라우 기록을 목숨값 표로 바꾸다
선을 긋다
- 1745 영국 해상보험법 — 물건에 먼저 그은 선
- 1762 에퀴터블 설립, 나이에 따라 보험료를 매기다
- 1769 인수업자들, 도박판이 된 로이즈를 떠나다
- 1774 영국 생명보험법, 피보험이익을 요건으로 못 박다
- 1783 종호 사건, 살인이 아니라 보험금 분쟁으로 다뤄지다
재난과 국가
- 1883 비스마르크, 세계 최초의 강제 사회보험을 만들다
- 1912 타이타닉 슬립에 신디케이트들이 이름을 적어 내려가다
지금
- 1964 대한민국 산재보험 시행, 처음 작동한 사회보험
- 2026 캘리포니아 최후의 보험자, 계약 66만 건을 넘다
커피 대신 소식을 팔던 가게
런던 롬바드 스트리트 16번지. 가게 안쪽에는 교회 설교단처럼 생긴 단이 하나 놓여 있었어요. 종업원이 그 위에 올라가 방금 들어온 해운 소식을 소리쳐 읽었어요. 어느 배가 어느 항구에 닿았고, 어느 배가 아직 소식이 없고, 어느 항로에 사략선이 떴다는 이야기였죠. 배를 두고 벌이는 촛불 경매도 여기서 열렸어요.
가게 주인의 이름은 에드워드 로이드였어요. 1680년대 후반 템스강 부두 가까운 타워 스트리트에서 가게를 열었고, 1691년 12월에 시티 한복판인 롬바드 스트리트로 옮겼어요. 그가 판 것은 커피가 아니라 소식이었어요. 선주와 선장, 상인과 중개인이 모이는 곳에 가장 빠른 정보가 쌓였고, 그 정보를 보러 사람들이 또 모였어요. 1734년에는 토머스 젬슨이 <로이즈 리스트>를 창간해 그 소문을 정기 간행물로 만들었어요. 보험은 처음부터 정보 산업이었어요.
여기서 실제로 벌어진 거래는 이랬어요. 중개인이 종이 한 장을 들고 옵니다. 어느 배가 무엇을 싣고 어디로 가는지가 적혀 있어요. 이 종이를 슬립이라고 불렀어요. 그 위험을 나눠 지겠다는 사람들이 종이 아래쪽에 자기 이름과 맡을 금액을 차례로 적어 내려갔어요. 언더라이터(underwriter)는 '아래에 이름을 쓰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직업 이름 안에 그 직업이 태어난 장면이 통째로 들어 있는 셈이죠. 파는 쪽은 중개인이고, 무엇을 얼마에 얼마만큼 맡을지 정하는 쪽이 언더라이터예요.
한 가지는 먼저 짚고 가야 해요. 로이즈는 보험회사가 아니라 보험을 사고파는 장터예요. 돈을 대는 회원, 그 돈을 모아 위험을 맡는 신디케이트, 신디케이트를 운영하는 관리대리인, 고객을 데려오는 브로커가 따로 있고, 로이즈 법인은 이 장터를 관리해요. 로이즈 스스로 자기가 보험자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어요. 그래서 '로이즈가 보험금을 냈다'가 아니라 '로이즈 시장의 신디케이트들이 냈다'가 정확한 말이에요. 덧붙이면 에드워드 로이드 본인은 평생 보험을 판 적이 없어요.
로이드는 1713년 2월에 죽었어요. 그가 만든 것은 회사가 아니라 자리였고, 그 자리는 그가 죽은 뒤에 더 커졌어요. 오늘날 로이즈 건물 안에는 종이 하나 걸려 있어요. 1799년 폭풍에 가라앉은 군함 루틴호에서 인양한 종이에요. 배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이 오면 그 종을 울렸어요. 약속으로만 이루어진 이 산업이 남긴, 몇 안 되는 만질 수 있는 물건이에요.
여기서 기억할 것 이 이야기의 무대는 회사가 아니라 장터예요. 그걸 알아야 뒤에 벌어지는 일들이 왜 그렇게 흘러갔는지 보입니다.
보험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에도 위험은 나뉘고 있었다
1816년 이탈리아 라누비움에서 두 단으로 글자가 새겨진 대리석 비문이 발굴됐어요. 서기 2세기 전반, 디아나와 안티노우스를 모시던 조합의 규약이었어요. 가입하려면 100세스테르티우스와 좋은 포도주 한 암포라를 내야 했고, 그다음부터는 다달이 1.25세스테르티우스를 냈어요. 회원이 죽으면 그 돈으로 장례를 치렀고요. 회원 대부분은 해방노예와 노예였어요.
이건 보험이 아니에요. 상호부조예요. 위험이 큰 사람에게 더 받지 않았거든요. 스무 살이든 예순 살이든 회비가 같았고, 이익을 내려는 사업도 아니었어요. 이 계보는 중세 길드를 거쳐 근대의 우애조합으로, 그리고 훗날 사회보험으로 이어져요. 커피하우스에서 시작한 계보와는 뿌리가 아예 달라요.
다른 뿌리는 훨씬 셈이 밝았어요. 함무라비 법전에는 배와 화물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규정이 있어요. 항해가 실패하면 빚을 갚지 않아도 되고, 성공하면 아주 높은 이자를 얹어 갚는 방식이었죠. 뒷날 보톰리라 불린 거래예요. 아테네의 해상 대부업자들도 같은 방식을 썼는데, 폭풍이 잦은 겨울 항해에는 이자를 더 높게 매겼어요. 위험의 값이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는 생각이 이때 이미 있었던 거예요. 다만 이건 보험료를 미리 받고 사고 때 보험금을 주는 구조가 아니라 조건부 대출이에요.
세 번째 뿌리는 규칙이에요. 서기 3세기 로마 법전이 '로도스 해법'이라는 이름으로 오래된 원칙을 인용해요. 배를 가볍게 하려고 화물을 바다에 던졌다면, 모두를 위해 잃은 것은 모두가 나눠 메워야 한다는 규칙이에요. 오늘날 해상보험의 공동해손이 여기서 나왔어요. 이 규칙은 나중에 아주 끔찍한 자리에서 다시 나와요.
대출과 보험이 갈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탈리아 상업 도시들에서였어요. 1343년 피사 문서와 1347년 10월 제노바의 공증 문서가 대표적이에요. 제노바 문서는 산타 클라라호가 마요르카까지 가는 항해를 담보했어요. 다만 이 증서들은 교회의 이자 금지를 피하려고 형식상 대차의 모양을 하고 있었고, '최초'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자료마다 달라요.
그리고 1601년, 잉글랜드 의회가 처음으로 보험에 관한 법을 만들어요. 프랜시스 베이컨이 하원에서 이 법을 지지하는 연설을 했어요. 법의 전문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어요. 보험증권 덕분에 배가 가라앉아도 어느 누구도 파멸하지 않고, 손실이 소수에게 무겁게 떨어지는 대신 다수에게 가볍게 흩어진다고요. 400년 전 사람들이 보험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그대로 담긴 문장이에요. 법은 분쟁을 다룰 보험재판소까지 세웠지만, 그 법정은 상인들에게도 기존 법원에도 환영받지 못해 거의 굴러가지 않았어요. 문장이 훌륭하다고 제도가 되지는 않았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보험의 뿌리는 하나가 아니에요. 값을 매기는 계보와 값을 매기지 않는 계보가 여기서 갈라지고, 둘이 다시 만나기까지는 아주 오래 걸립니다.
미신을 깨려던 목사의 장부가 목숨값 표가 되기까지
브레슬라우, 오늘날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예요. 그곳 개신교 목사 카스파어 노이만은 몇 해 동안 같은 일을 했어요. 자기 도시에서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었는지를 하나하나 적는 일이었죠. 목적은 통계가 아니었어요. 나이가 몇이 되는 해에 죽기 쉽다는 미신이 돌고 있었고, 그는 그게 틀렸다는 걸 보이고 싶었어요.
그 종이 뭉치가 여행을 시작해요. 라이프니츠를 거쳐 런던 왕립학회로, 다시 에드먼드 핼리의 손에 들어갔어요. 혜성으로 이름을 남긴 그 핼리예요. 그는 1693년 2월 8일부터 3월 8일까지 딱 한 달 동안 이 자료를 붙들고 계산해 논문 한 편을 냈어요. 제목의 뒷부분이 중요해요 — '종신연금의 가격을 정하려는 시도'. 나이별로 몇 명이 살아남는지를 표로 만들면, 어떤 사람에게 해마다 얼마를 평생 주기로 하는 계약의 값을 계산할 수 있다는 뜻이었어요. 하필 브레슬라우였던 이유도 좋아요. 런던이나 파리와 달리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 숫자가 흐려지지 않는 도시였거든요.
그런데 이 수학의 출발점에는 도박꾼이 있었어요. 1654년 슈발리에 드 메레라는 도박꾼이 블레즈 파스칼에게 물었어요. 게임이 중간에 끊기면 판돈을 어떻게 나누느냐고요. 파스칼과 피에르 드 페르마가 편지를 주고받으며 답을 냈고, 확률론이 거기서 태어났어요. 1662년에는 런던의 포목상 존 그랜트가 교구가 벽에 붙이던 사망 명부를 몇십 년치 모아 셈해 책을 냈어요. 학자가 아니라 상인이 통계를 시작한 거예요. 숫자를 세는 습관은 장부에서 왔거든요.
1713년에는 야코프 베르누이의 <추측술>이 그가 죽은 지 8년 만에 나와요. 그가 스스로 '황금 정리'라 부른 것, 곧 대수의 법칙이 여기서 처음 엄밀하게 증명돼요. 한 사람이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만 명 중 몇 명이 죽을지는 꽤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이야기예요. 보험이 예언이 아니라 집계인 이유가 이 정리에 있어요. 같은 해 2월, 롬바드 스트리트의 에드워드 로이드가 죽었어요. 감으로 위험을 재던 사람이 죽은 해에, 수학으로 위험을 재는 정리가 세상에 나온 셈이에요.
다만 표가 있다고 곧바로 쓰이지는 않았어요. 핼리의 표는 70년 가까이 잠들어 있었어요. 1706년에 문을 연 어미커블 소사이어티는 세계 최초의 상호 생명보험 조직으로 꼽히는데, 회원이 해마다 같은 돈을 내고 그해 죽은 회원의 유족이 그 돈을 나눠 갖는 방식이었어요. 열두 살과 마흔다섯 살이 같은 돈을 냈어요. 확률을 쓴 보험이라기보다 회비를 나눠 갖는 제비뽑기에 가까웠죠.
수학자 제임스 도드슨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여기에 가입을 거절당했다고 전해져요. 그는 나이가 많으면 그만큼 더 내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핼리의 표 위에서, 나이에 따라 보험료를 다르게 매기되 계약 기간 내내 같은 금액을 내는 방식을 설계했어요. 젊을 때 더 낸 돈을 쌓아 두었다가 나이 들어 쓰는 구조예요. 도드슨은 1757년에 죽어 자기 회사를 보지 못했고, 5년 뒤인 1762년 그의 방식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에퀴터블을 세웠어요. 리처드 프라이스 목사의 조카 윌리엄 모건은 1775년 이 회사의 액추어리가 되어, 앞으로 갚아야 할 돈이 얼마인지를 처음 계산해 냈어요. 지나간 것을 적는 회계가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계산하는 직업이 그 방에서 생겼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도박을 밀어낸 도구가 도박판의 질문에서 나왔어요. 이 아이러니가 다음 장의 척추가 됩니다.
남의 목숨에 돈을 걸 수 있던 시절
1771년 5월, <런던 이브닝 포스트>가 이런 기사를 실었어요. 프랑스 외교관 겸 첩자였던 데옹 기사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두고 걸린 돈이 6만 파운드를 넘었다고요. 기록에 따라 12만, 20만 파운드까지 적은 자료도 있어서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어요. 확실한 건 사람의 몸을 두고 그만한 돈이 오갔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그 내기 증권은 주식중개인 사무실에서도, 로이즈에서도 만들어졌어요. 내기와 보험이 같은 방에서 같은 종이로 만들어지고 있었던 거예요.
이런 일은 유별난 사건이 아니었어요. 그때는 아무나 모르는 사람의 목숨에 보험을 들 수 있었어요. 재판을 앞둔 피고, 먼 항해를 떠나는 제독, 병들었다는 소문이 도는 주교, 처형을 기다리는 죄수. 누구든 값이 매겨질 수 있는 대상이었어요.
이 방을 정리하는 데는 세 번의 움직임이 필요했어요. 첫 번째는 물건 쪽이었어요. 1745년 영국 의회가 해상보험법을 통과시켜요. 법의 서문은 '이해관계가 있든 없든' 식의 보험이 해운의 위험을 담보한다는 핑계 아래 해로운 종류의 도박을 끌어들였다고 적었어요. 1746년 8월 1일부터, 배나 화물에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드는 보험은 전부 무효가 됐어요. 그전에는 남의 배가 가라앉는 쪽에 돈을 걸 수 있었고, 전쟁 중에는 적국 상인이 영국 배의 침몰에 돈을 걸기도 했어요.
두 번째 움직임은 법이 아니라 사람들이 했어요. 1760년대 후반, 로이즈 커피하우스는 아무 위험이나 받아 주는 곳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었어요. 1769년 3월, 종업원이던 토머스 필딩이 포프스 헤드 앨리 5번지에 연 80파운드를 주고 방을 얻어 '뉴 로이즈 커피하우스'를 차리고 기존 손님들에게 카드를 돌렸어요. 진지한 인수업자들이 도박꾼들을 두고 나와 버린 거예요. 생명보험법이 오기 다섯 해 전에, 시장 사람들이 스스로 방을 옮겼어요. 2년 뒤에는 상인과 인수업자, 중개인 79명이 각각 100파운드씩 잉글랜드 은행에 넣어 첫 로이즈 위원회를 꾸렸어요. 1774년 이들은 콘힐의 왕립거래소로 옮겨 갔고, 배가 돌아오지 않은 소식을 적는 손실장부를 놓았어요.
세 번째가 법이에요. 1774년 5월 20일, 생명보험법이 국왕의 재가를 받아요. '도박법'이라고도 불리는 이 법은 네 가지를 정했어요. 이해관계 없는 보험은 무효, 수익자는 증권에 이름을 적을 것, 지급액은 실제 이해관계의 크기를 넘을 수 없을 것, 배와 화물은 이 법에서 뺄 것. 핵심은 첫 번째예요. 그 일이 벌어졌을 때 내가 실제로 손해를 봐야만 보험에 들 수 있다는 조건, 피보험이익이에요. 내 집이 타면 내가 손해니까 내 집에는 들 수 있고, 옆집이 타는 쪽에는 들 수 없어요.
이 한 줄이 도박과 보험을 갈라요. 도박은 아무 상관 없는 일에 돈을 걸고 이기면 없던 이익이 생겨요. 보험은 잃은 것을 되돌려 놓을 뿐 그 이상을 주지 않아요. 세 번째 조항이 지급액에 상한을 둔 것도 그래서예요. 참고로 생명보험에서 이 이익을 따지는 시점은 계약할 때이고, 손해보험은 사고가 난 때에도 이익이 있어야 해요. 같은 규칙인데 재는 자리가 달라요.
법원도 곧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어요. 1778년 1월 31일, 대법원장 맨스필드 경은 데옹 기사의 성별에 걸린 계약 하나를 무효로 만들었어요. 원고가 75기니를 내고 데옹이 여자로 밝혀지면 300파운드를 받기로 한 계약이었어요. 배심은 원고에게 300파운드를 주라고 했지만, 맨스필드는 남의 성별에 돈을 거는 계약이 그 사람의 이익을 해치므로 법이 지켜 줄 수 없다고 했어요. 왕립거래소에 놓인 손실장부에는 그 뒤로도 배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소식이 깃펜과 잉크로 적혔어요. 지금도 날마다 그렇게 적혀요.
여기서 기억할 것 이 글의 심장이에요. 선은 한 번에 그어지지 않았어요. 물건에는 법이 먼저, 사람 목숨에는 시장 사람들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한 사람당 30파운드
1781년 11월 29일, 대서양 한복판의 노예선 종호 갑판에서 선원들이 사람들을 바다로 던지기 시작했어요. 며칠에 걸쳐 이어졌어요. 배는 그해 8월 18일 아크라를 떠났고, 110톤짜리 선체에 440명이 넘는 사람이 실려 있었어요. 안전 적재량의 네 배가 넘었다는 서술이 함께 나와요. 물이 모자란다는 것이 이유였어요. 던져진 사람은 130명이 넘어요. 자료에 따라 승선 인원도 살해된 사람 수도 갈려서, 정확한 수는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어요.
리버풀의 선주들은 그다음에 보험사에 청구서를 냈어요. 한 사람당 30파운드였어요. 사람에게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는 뜻이에요.
1783년 3월, 런던 길드홀에서 재판이 열렸어요. 그런데 이 재판은 살인 사건이 아니었어요. 법정에서 다툰 것은 '화물을 정당하게 버렸는가'였어요. 배심은 선주들의 손을 들어 줬고, 보험사가 항소하자 맨스필드 경은 항해 중에 비가 내렸다는 새 증거를 들어 재심을 명했어요. 그는 노예제를 심판한 것이 아니에요. 보험금 청구가 정당한지를 심판했어요. 선원 중 누구도 살인으로 기소되지 않았어요.
선주들이 든 논리가 무엇이었는지가 중요해요. 앞에서 본 공동해손이에요. 모두를 위해 버린 것은 모두가 나눠 문다는, 로마 법전에까지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위험 분담 규칙이요. 위험을 나눈다는 인간적인 발상이 사람을 화물 칸에 집어넣는 계산에 그대로 쓰였어요.
해방 노예였던 올라우다 에퀴아노가 이 사건을 폐지론자 그랜빌 샤프에게 알렸고, 샤프는 선원들을 살인죄로 기소하려 했지만 실패했어요. 그래서 이 일은 재판 기록에 보험 분쟁으로만 남았어요.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이후 노예제 폐지 운동의 가장 강한 무기가 됐어요. 보험이 노예제를 만든 것은 아니에요. 다만 그 시대가 사람을 무엇으로 취급했는지를 보험 서류만큼 정직하게 적어 둔 문서도 없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값을 매긴다는 일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장이에요. 앞 장의 규칙이 여기서 가장 어두운 얼굴로 돌아옵니다.
불을 끄던 뱃사공들, 그리고 보험사가 든 보험
1680년대 런던 거리에서 불이 나면, 파란색이나 초록색, 진홍색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펌프를 끌고 달려왔어요. 왼팔에는 회사 문양이 새겨진 커다란 금속 배지를 달고 있었고요. 소방관이 아니라 보험사가 고용한 템스강 뱃사공들이었어요. 배를 젓던 팔로 물을 퍼 나른 거예요.
이 풍경은 1666년 9월의 나흘에서 시작됐어요. 푸딩 레인의 빵집에서 난 불이 런던을 태웠어요. 주택 13,200채와 교회 87곳이 사라졌고 436에이커가 잿더미가 됐어요. 피해는 당대 추산으로 1,000만 파운드가 넘었어요. 도시 전체가 한꺼번에 재가 되는 위험을 아무도 떠맡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제야 드러났어요.
경제학자이자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니콜라스 바본은 그 뒤로 불에 타 사라진 건물의 수를 꾸준히 세어 기록했어요. 그 통계를 밑천 삼아 1680년 왕립거래소 뒤편에 화재사무소를 세우고 이듬해부터 보험을 팔았어요. 위험을 세어 본 사람이 위험을 팔았어요. 앞선 1676년 함부르크의 화재금고도 있었지만 그건 회사가 아니라 도시가 만든 공적 기구였어요. 런던에서는 1696년 핸드 인 핸드, 1710년 선 파이어 오피스가 뒤따랐고, 회사들은 가입한 집 벽에 금속 표식을 못 박아 붙였어요.
여기서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붙어 다녀요. 표식이 없는 집은 소방대가 그냥 지나쳤다는 이야기요. 런던 소방박물관은 이걸 통념이라며 분명하게 부정해요. 불이 번지면 동네가 통째로 타고, 그러면 모든 보험사가 손해를 보니까요.
같은 발상이 바다 건너에도 생겼어요. 1752년 필라델피아에서 사람들이 모여, 손실이든 이익이든 똑같이 나눠 갖는 기여자로 남기로 합의해요. 벤저민 프랭클린이 창립 회원 중 한 사람이었어요. 이 조합이 만든 미국 최초의 화재 표식은 납으로 뜬 네 개의 맞잡은 손이었어요. 상호부조를 그림 하나로 보여 주는 물건이에요.
그리고 1833년 1월 1일, 런던의 보험사 소방대 열 곳이 하나로 합쳐 런던 소방엔진기구가 됐어요. 초대 감독관은 제임스 브레이드우드였어요. 회사마다 제복 색이 다르던 사설 소방대가 도시 전체를 지키는 하나의 조직으로 넘어가는 첫걸음이었어요. 보험이 만들어 낸 것을 보험이 도시에 넘긴 셈이에요.
그런데 회사 자신은 누가 지킬까요. 1835년 12월 16일 밤, 영하 20도에 가까운 추위 속에서 뉴욕 남부 맨해튼에 불이 났어요. 소방 호스의 물이 얼어붙었어요. 이튿날까지 금융지구 17개 블록, 건물 674채가 탔고 피해는 약 2,000만 달러로 추산됐어요. 더 큰 사건은 그다음이었어요. 뉴욕의 화재보험사 26곳 가운데 대부분이 청구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졌어요. 보험금을 다 지급한 것은 자본이 두툼했던 코네티컷 하트퍼드의 회사들이었고, 그 뒤로 하트퍼드가 미국 보험의 중심이 됐어요.
보험료는 계약자가 내는 돈, 보험금은 사고가 났을 때 받는 돈, 지급여력은 약속을 지킬 수 있는 힘, 곧 자본이 얼마나 두툼한지예요. 뉴욕의 회사들이 무너진 것은 보험료가 싸서가 아니라 지급여력이 한 도시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에요. 대수의 법칙은 위험들이 서로 독립일 때 힘을 써요. 한 번에 모두가 당하는 위험 앞에서는 무너져요.
그래서 보험사가 드는 보험이 생겨요. 재보험이에요. 1842년 함부르크 대화재로 보험사들이 무더기로 무너진 뒤 1846년 4월 세계 최초의 독립 전업 재보험사인 쾰른 재보험이, 1861년 스위스 글라루스의 큰불 뒤인 1863년 12월에는 스위스 재보험이 세워졌어요. 1880년에는 뮌헨의 은행가와 산업가들이 뮌헨 재보험을 설립했고요. 경영을 맡은 카를 폰 티메의 전략은 단순했어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회사에서 조금씩 받아 위험을 넓게 흩뿌린다.
1871년 10월에는 시카고가 이틀 동안 탔어요. 피해는 2억 달러가 넘었고, 그때 시카고에서 영업하던 보험사는 129곳이었어요. 그런데 정작 중요한 숫자는 그게 아니에요. 보험에 든 집주인이 절반이 안 됐어요. 게다가 보험사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실제로 지급된 돈은 그 절반에서 다시 반토막이 났어요. 같은 해 영국에서는 로이즈 법이 통과돼 로이즈가 처음으로 법인격을 얻었고요. 한쪽 잿더미 위에서는 보험사들이 사라지고, 다른 쪽에서는 보험이 제도의 옷을 입었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민간이 만들고 공공이 넘겨받는 흐름, 그리고 보험사도 함께 죽는다는 발견. 국가가 등장할 자리가 여기서 준비됩니다.
증권의 문언과 상관없이 전액 지급하라 — 계산이기도 했던 한 줄
1906년 4월 18일 샌프란시스코가 흔들렸고, 이어진 불이 도시를 태웠어요. 며칠 뒤 런던의 한 인수업자가 샌프란시스코 대리인에게 전보를 쳤어요. 증권의 문언과 상관없이 우리 계약자 전원에게 전액 지급하라. 커스버트 히스라는 사람이었어요.
왜 이 한 줄이 특별했을까요. 그때 대부분의 화재보험 증권은 지진을 담보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많은 보험사가 지진 손해인지 화재 손해인지 가릴 수 없다며 80%만 주겠다고 버텼어요. 실제로 화재 손실은 5억 달러가 넘었는데 그중 보험에 들어 있던 것은 약 40%, 2억 3,500만 달러였고 지진 자체 손실은 2,400만 달러로 집계됐어요. 로이즈 시장의 신디케이트들은 5,000만 달러가 넘게 물어냈고, 그 뒤 미국은 이 시장의 가장 큰 고객이 됐어요. 뮌헨 재보험은 1,100만 마르크를 떠안았는데, 그 회사 한 해 수입보험료의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어요.
이걸 착한 보험사 이야기로만 읽으면 곤란해요. 히스의 결정은 평판이라는 자산에 대한 계산이기도 했어요. 같은 시장의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고요. 히스는 원래 아무도 값을 매기려 하지 않던 위험을 차례로 상품으로 만든 사람이었어요. 1889년 도난보험을 시작으로 전위험담보, 기업휴지보험, 사용자 배상책임, 지진과 허리케인 보험, 초과손해액 재보험까지요. 원칙은 한 문장이었어요. 값만 맞으면 어떤 위험이든 인수할 수 있다.
6년 뒤 그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종이 한 장이 만들어져요. 1912년 1월 9일, 중개인 윌리스 페이버가 타이타닉과 자매선 올림픽의 보험을 들러 인수실에 왔어요. 선체 담보는 척당 100만 파운드. 슬립 한 장 아래로 여러 신디케이트가 1만 파운드에서 7만 5,000파운드씩 자기 이름과 금액을 적어 내려갔어요. 보험료는 100파운드당 15실링, 한 척에 7,500파운드였어요. 4월 15일 배가 가라앉았고, 화이트 스타는 30일 안에 전액을 받았어요. 그 지급액은 그해 이 시장 전체 보험료 수입의 20%에 해당했어요. 손해의 20%를 부담했다는 뜻이 아니라, 한 건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에요.
그러나 같은 시장이 스스로 무너질 뻔한 적도 있어요. 1988년 파이퍼 알파 시추선 폭발과 엑슨 발데스 기름 유출, 잇단 허리케인이 겹쳤고, 재보험이 재보험을 사고 그것을 다시 재보험이 사는 구조 속에서 같은 손해가 여러 층을 돌며 몇 번씩 청구됐어요. 거기에 수십 년 전에 인수해 둔 석면과 환경오염 배상책임이 한꺼번에 몰려왔고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손실은 약 80억 파운드에 이르렀어요. 자본을 대던 개인 회원 '네임'은 3만 4,000명이었는데, 그중 약 5,000명이 한 사람당 60만 파운드가 넘는 손실을 떠안았어요. 무한책임이었기 때문에 집과 재산을 잃은 사람이 나왔어요. 1996년 로이즈는 옛 부채를 에퀴타스라는 별도 회사에 몰아넣었고, 2006년 버크셔 해서웨이가 그 회사를 인수하면서 네임들은 비로소 손을 털었어요.
위험을 넓게 흩뿌린다는 발상은, 흩뿌린 자리를 아무도 못 세게 되는 순간 정반대로 작동해요. 종이 한 장 아래에 이름을 적는 일이 어떤 무게였는지가 그때 드러났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약속을 지킨 결정과 약속에 깔린 사람들이 같은 시장 안에 있었어요. 보험을 미담으로도 사기극으로도 읽지 않게 해 주는 장입니다.
가입할지 말지를 내가 정하지 않는 보험
영국 노동자의 주급 봉투에서 4펜스가 빠져나갔어요. 대신 고용주가 3펜스, 국가가 2펜스를 얹었어요. 쌓이는 것은 주당 9펜스였고, '4펜스로 9펜스를'이라는 구호가 여기서 나왔어요. 재무장관 로이드 조지가 내무장관 처칠의 도움을 받아 만든 국민보험법이 1911년 12월 16일 재가됐어요.
낸 것보다 더 받는 구조가 처음부터 설계에 들어 있다는 점이 중요해요. 민영 보험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 앞에 독일이 있었어요. 재상 비스마르크가 1883년 질병보험법, 1884년 재해보험법, 1889년 노령·폐질보험법을 차례로 밀어붙였어요. 재해보험료는 사용자가 전액 냈고, 노령보험은 노사가 절반씩 내고 국가가 보탰어요. 세계에서 처음으로, 가입할지 말지를 개인이 정하지 않는 보험이 만들어진 거예요. 노동자를 아껴서가 아니라 사회주의의 매력을 꺾으려는 계산이었다는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학계 논쟁은 남아 있어요.
왜 강제였을까요. 역선택 때문이에요. 자기가 위험하다는 걸 아는 사람일수록 보험에 열심히 들고, 보험사는 그걸 몰라요. 그러면 보험료가 오르고, 덜 위험한 사람이 먼저 빠져나가고, 다시 보험료가 올라요. 끝까지 가면 시장이 사라져요. 역선택은 계약을 맺기 전에 생기는 문제예요. 나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가 한쪽에만 있는 문제죠. 모두가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 없으니 이 고리가 생기지 않아요. 그래서 사회보험은 '국가가 운영하는 보험'이 아니라 '위험에 따라 값을 매기지 않기로 한 보험'이에요. 어느 쪽이 우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둘은 서로 다른 문제를 풀어요.
물론 1911년 법도 전 국민의 것은 아니었어요. 대상은 임금 노동자, 곧 노동력의 약 70%였고 가족과 무급 노동자는 빠졌어요. 1913년까지 실업보험 가입자가 약 230만 명, 질병보험 가입자가 약 1,500만 명이 됐어요. 미국은 1935년 8월 사회보장법으로 노령연금과 실업보험을 만들었지만 의료를 뺐고, 그 빈칸이 1965년 7월 메디케어까지 이어졌어요. 서명식은 미주리주의 트루먼 도서관에서 열렸고, 20년 전 전 국민 건강보험을 밀다 실패한 해리 트루먼이 그 자리에서 1호 가입자가 됐어요. 영국에서는 1942년 11월 베버리지가 결핍·질병·무지·불결·나태라는 다섯 거인의 이름을 부른 보고서를 냈고, 발표 2주 만에 국민의 95%가 그 보고서를 안다고 답했어요. 거기서 1946년 국민보험법과 1948년의 NHS가 나왔어요.
한국은 어땠을까요. 1922년 10월 조선화재해상보험이 세워졌어요. 일제강점기 조선에 본사를 둔 손해보험사였고, 창립 주체까지는 확인되지 않아요. 이름을 두 번 바꿔 지금까지 이어지는, 현존하는 한국 보험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회사예요. 1946년 9월에는 대한생명보험이 문을 열었고요. 유럽에서 국가가 보험을 떠맡던 무렵, 이쪽에서는 이제 막 회사가 생기고 있었어요.
제도는 늦게 왔어요. 1963년 12월 의료보험법이 만들어졌지만 가입이 강제가 아니어서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같은 해 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1964년에 시행되면서 처음으로 실제 작동한 사회보험이 됐어요. 광업과 제조업의 큰 사업장부터였어요. 의료보험은 1977년 7월 500인 이상 사업장에서 본격 시행돼 1979년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으로, 1989년 7월 나머지 국민에게까지 넓어졌어요. 법이 생긴 지 26년 만이었어요. 그때까지 보험자는 수백 개 조합으로 쪼개져 있었는데 1998년과 2000년의 통합을 거쳐 하나가 됐어요. 위험을 잘게 쪼개면 아픈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모인 조합이 먼저 무너지기 때문이에요. 연금은 1973년 12월에 법을 만들고 석유파동으로 미뤘다가 1988년 1월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작해 1999년 도시 지역, 2003년 1인 이상 사업장까지 넓어졌어요. 1995년에는 고용보험이, 2008년 7월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됐어요. 늙어서 혼자 살기 어려워지는 일을 제도가 나눠 지겠다는 다섯 번째 보험이었고, 2024년 기준 인정자는 116만 5,000명이에요.
한국의 연표에서 거듭 나오는 것이 연도가 아니라 '몇 인 이상 사업장'인 이유가 여기 있어요. 사회보험은 법이 생긴 해가 아니라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완성돼요.
여기서 기억할 것 커피하우스의 계보와 장례조합의 계보가 여기서 다시 만나요. 한쪽은 값을 매기고, 한쪽은 매기지 않기로 합니다.
정확하게 값을 매길수록 누군가는 밀려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미시시피의 한 부부가 보험사에서 수표를 받았어요. 1,667달러였어요. 집은 13만 달러가 넘게 부서져 있었고요. 증권에 물 피해를 빼는 조항이 있었고, 바람과 물이 함께 작용했을 때 어디까지가 바람 몫인지를 두고 다툼이 붙었어요. 2007년 미 연방 제5순회항소법원은 바람 때문이라고 증명된 1,228달러 16센트만 담보된다고 판결했어요. 회사가 나빴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두 원인이 동시에 작용했을 때 담보를 배제하는 약관 조항이 그렇게 작동했다는 이야기예요.
여기서 꼭 짚어야 할 게 있어요. 카트리나의 1,250억 달러는 총 피해액이지 보험손실이 아니에요. 재난 보도에서 가장 흔한 오류가 이 둘을 바꿔 쓰는 거예요. 반대 방향으로 간 판결도 있어요. 2021년 1월 영국 대법원은 금융감독청이 계약자들을 대신해 여덟 개 보험사를 상대로 낸 코로나19 기업휴지보험 시험소송에서 대체로 계약자의 손을 들어 줬고, 수천 건의 청구가 그 판결로 지급됐어요.
한국에서는 다른 종류의 질문이 진행 중이에요. 2024년 말 기준 실손의료보험은 계약이 3,596만 건, 피보험자가 약 4,000만 명이에요. 그해 비급여 진료비 20.2조 원 가운데 8.2조 원을 이 보험이 부담했어요. 같은 해 건강보험 보장률은 64.9%, 총 진료비는 138.6조 원이었고 그중 비급여는 21.8조 원으로 집계됐어요. 앞의 20.2조 원과 숫자가 다른 것은 조사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공적 보험이 채우지 못한 자리를 민영 보험이 메우고 있어요. 그 민영 보험이 다시 진료량에 영향을 준다는 지적도 이 숫자에서 나와요. 여기서 자주 불려 나오는 말이 도덕적 해이인데, 도덕적 해이는 반대로 계약을 맺은 뒤에 생기는 문제예요. 사람을 나무라는 말이 아니라, 위험을 남이 지면 행동이 달라진다는 구조를 가리키는 말이고요. 자기부담금과 보상한도가 그 구조를 누르려고 만들어진 장치예요.
무엇을 알고 값을 매겨도 되는가 하는 질문은 더 날카로워졌어요. 2008년 5월 미국은 유전정보차별금지법에 서명해 건강보험사가 유전정보로 보험료를 올리거나 가입을 거절하지 못하게 했어요. 그런데 이 법은 생명보험과 장애보험, 장기요양보험에는 미치지 않아요. 같은 나라 안에서 같은 유전자 정보를 두고 한쪽은 못 보고 한쪽은 볼 수 있는 거예요. 2021년 7월 콜로라도는 보험사가 외부 데이터와 알고리즘, 예측모형을 쓸 때 인종이나 성별, 장애로 부당하게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시험해 증명하게 했고요.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예요. 보험은 위험이 다른 사람에게 다른 값을 매겨야 계산이 맞는데, 그 정확함이 커질수록 누군가는 시장 밖으로 밀려나거든요.
캘리포니아는 그 긴장이 눈에 보이는 곳이에요. 2023~2024년 사이 상위 12개 보험사 중 일곱 곳이 신규 주택보험 인수를 멈췄어요. 요율 인상이 규제로 막혀 있는데 재보험 비용이 치솟아, 값을 올리는 대신 아예 팔지 않는 쪽을 고른 거예요. 2025년 1월 로스앤젤레스의 산불은 그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재난이 됐어요. 뮌헨 재보험 집계로 총 손실 530억 달러, 보험손실은 약 400억 달러였어요.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이 1968년에 만든 최후의 보험자, FAIR 플랜이에요. 계약은 2019년 12만 4,000건에서 2026년 3월 66만 3,000건이 됐어요. 이 기구는 원래 도심의 특정 동네를 지도에 빨간 줄로 표시해 배제하던 관행 때문에 만들어졌어요. 그 줄이 이제 산불 위험도 지도로 다시 그어지고 있어요.
세계 전체로 봐도 마찬가지예요. 뮌헨 재보험 집계로 2024년 자연재해 총 손실은 3,200억 달러였고 보험이 문 것은 1,400억 달러였어요. 나머지 1,800억 달러는 개인과 기업, 정부가 그냥 떠안았어요. 이 차이를 보험 격차라고 불러요. 150년 전 시카고에서 집주인의 절반도 보험에 들어 있지 않았던 것과 구조가 같아요.
그러는 사이 커피하우스에서 시작한 시장은 여전히 돌아가요. 2026년 상반기 로이즈 시장은 347억 파운드를 인수해 합산비율 90.8%, 세전이익 35억 파운드를 냈어요. 합산비율이 100% 아래라는 건 보험영업에서 흑자를 냈다는 뜻이에요. 왕립거래소에서 시작한 손실장부는 지금도 깃펜과 잉크로 쓰이고요. 수백 년 동안 답을 고쳐 온 질문은 하나예요. 누구의 위험을, 누가, 얼마에 떠맡을 것인가. 앞일을 맞힐 필요는 없어요. 값을 매길 수 없다고 판단한 위험 앞에서 민간이 물러설 때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오는지, 그 한 곳만 보고 있으면 돼요.
여기서 기억할 것 예언이 아니라 관전법이에요. 민간이 물러난 자리에 무엇이 들어오는지, 그 한 가지만 보면 됩니다.
🤔 흔한 오해
함무라비 법전이 세계 최초의 보험 문서다.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것은 보톰리라는 조건부 대출이에요. 보험료를 미리 받고 위험을 떠맡는 구조가 아니라, 돈을 빌려주고 항해가 성공하면 높은 이자와 함께 돌려받는 거래죠. 학계는 이것을 순수한 대출도, 조합도, 보험도 아니라고 정리해요. '보험이 있었다'가 아니라 '보험과 닮은 위험 거래가 있었다'가 정확한 표현이에요.
화재보험 표식이 없는 집은 보험사 소방대가 그냥 지나쳤다.
런던 소방박물관은 이것을 널리 퍼진 통념이라며 분명하게 부정해요. 소방대는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불에 나갔어요. 불이 번지면 동네가 통째로 타고, 그러면 모든 보험사가 손해를 보니까요. 표식의 실제 용도는 가입 증명과 도난 방지, 그리고 번지수가 없던 시절의 길 안내였어요.
로이즈 오브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험회사다.
로이즈는 보험회사가 아니라 보험을 사고파는 시장이에요. 로이즈 자신이 보험자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어요. 위험을 실제로 맡는 것은 시장 안의 신디케이트들이고, 로이즈 법인은 그 장터를 운영하고 관리해요. 그래서 '로이즈가 보험금을 냈다'는 표현도 엄밀히는 부정확해요. 덧붙이면 에드워드 로이드 본인은 보험을 판 적이 없어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보험손실은 1,250억 달러였다.
1,250억 달러는 2005년 달러 기준 총 피해액이지 보험손실이 아니에요. 이 둘을 바꿔 쓰는 것이 재난 보도에서 가장 흔한 오류예요. 보험손실은 언제나 총 피해보다 훨씬 작고, 그 차이가 보험 격차예요. 카트리나에서는 바람 피해와 물 피해를 가르는 약관 때문에 그 차이가 특히 크게 벌어졌어요.
보험은 물건이 아니라 약속이에요. 런던 커피하우스에서 배를 두고 돈을 걸던 사람들이 종이 아래에 이름을 적으면서 시작됐고, 남의 목숨에까지 값을 걸던 시절을 지나 세 번의 움직임으로 도박과 갈라졌어요. 물건에 대해서는 1745년 법이, 시장 안에서는 1769년의 이사가, 사람 목숨에 대해서는 1774년 법이 선을 그었고, 남은 규칙은 하나였어요. 내가 손해를 봐야만 보험에 들 수 있다. 도시가 통째로 타는 것을 본 뒤에는 보험사를 위한 보험이,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위험 앞에서는 국가가 강제로 가입시키는 사회보험이 생겼어요. 지금은 값을 정확히 매길수록 누군가 시장 밖으로 밀려나는 문제와, 재난 손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몫만 보험에 들어 있는 문제를 함께 안고 있어요.
참고 자료
본문의 연도와 숫자는 아래 자료를 근거로 씁니다. 틀린 곳을 찾으시면 알려주세요.
- 커피와 상업 1652–1811 / 로이즈 리스트의 역사 · Lloyd's of London; Royal Museums Greenwich — 1734년 로이즈 리스트 창간, 1769년 포프스 헤드 앨리 분리와 연 80파운드 임차, 1771년 79명·각 100파운드, 1774년 왕립거래소 이전과 손실장부
- Lloyd's Coffee House · Wikipedia — 타워 스트리트 개점과 롬바드 스트리트 이전, 설교단과 촛불 경매, 에드워드 로이드의 사망
- 재난과 청구 — 타이타닉 / 1906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 루틴호 · Lloyd's of London — 타이타닉 부보 조건과 신디케이트별 인수액, 샌프란시스코의 손실 구조와 히스의 전보, 루틴호의 종
- 로이즈란 무엇인가 / 2026년 상반기 실적 · Lloyd's of London — 로이즈가 보험자가 아니라 시장이라는 자기 규정, 2026년 상반기 인수보험료·합산비율·세전이익
- 초기 보험사 소방대 / 런던 대화재 · London Fire Brigade Museum; London Museum — 1666년 소실 규모, 바본의 화재사무소와 뱃사공 소방대, 화재 표식 통념의 부정, 1833년 소방대 통합
- 1774년 생명보험법 / 1745년 해상보험법 · Wikipedia; legislation.gov.uk — 1774년 5월 20일 재가와 네 조항, 1745년 법의 'Interest or no Interest' 문구와 1746년 시행, 월폴의 발언
- 다 코스타 대 존스(1778) / 맨스필드와 데옹 기사 · Wikipedia; OUPblog (Oxford University Press) — 데옹 기사에게 걸린 판돈의 기록들, 75기니 대 300파운드 계약과 1778년 맨스필드의 무효 판결
- 종호 사건 · Wikipedia; Insurance Museum (UK) — 1781년 출항과 인원 자료의 편차, 1인당 30파운드, 1783년 그레그슨 대 길버트 재판과 재심 명령
- 보험의 역사 / 보톰리 / 라누비움 장례조합 규약(CIL 14.2112) · Wikipedia; Academia.edu — 보톰리의 성격, 로마 법전의 로도스 해법 인용, 라누비움 조합의 회비, 1343~1347년 이탈리아 증서, 베르누이 <추측술>
- 핼리의 생명표 다시 보기(2011) / 인류 사망률 추정(1693) · Journal of the Royal Statistical Society A; Philosophical Transactions, The Royal Society — 노이만의 수집 동기와 자료의 전달 경로, 브레슬라우가 선택된 이유, 핼리의 한 달과 논문 제목
- 에퀴터블 생명보험 조합 / 어미커블 소사이어티 · Wikipedia; RGA — 1706년 어미커블의 연령 무관 동일 회비, 도드슨의 거절 일화와 평준보험료, 1762년 에퀴터블 설립, 모건의 액추어리 취임
- 재보험의 짧은 역사 (Reinsurance News 65호) · Society of Actuaries — 1601년 잉글랜드 보험법의 전문과 베이컨의 연설, 보험재판소의 기능 부전, 쾰른 재보험 설립
- 초기의 뮌헨 재보험 (1880–1914) · Munich Re — 1880년 면허와 설립, 카를 폰 티메의 분산 전략, 190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떠안은 1,100만 마르크
- 1863년에 시작된 스위스 재보험 · Swiss Re — 1861년 글라루스 대화재가 드러낸 담보 부족과 1863년 12월 공동 설립
- 2024년·2025년 자연재해 집계 · Munich Re — 2024년 총 손실과 보험손실, 2025년 집계와 로스앤젤레스 산불의 손실 규모
- 필라델피아 화재보험조합의 역사 · The Philadelphia Contributionship; Founders Online (National Archives) — 1752년 이사 선출과 첫 회의의 합의, 프랭클린의 창립 참여, 네 개의 맞잡은 손 화재 표식
- 1835년 뉴욕 대화재 / 시카고 대화재의 손실 · Wikipedia; Chicago History Museum·Northwestern University — 1835년 뉴욕의 소실 규모와 보험사들의 붕괴, 1871년 시카고의 피해와 보험사 수, 부보율 절반 미만
- 비스마르크 / 1935년 사회보장법 / 메디케어 서명 · U.S. 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 National Archives — 1883·1884·1889년 독일 세 법의 내용과 정치적 동기, 1935년 사회보장법의 구성, 1965년 메디케어 서명과 트루먼
- 1911년 국민보험법 / 베버리지 보고서 · Wikipedia — 주당 9펜스 분담과 구호, 1913년 적용 인원과 노동력의 약 70%라는 한계, 다섯 거인과 95% 인지, NHS 출범
- 벼랑 끝에서 돌아오다 — 로이즈의 위기 / 에퀴타스 · Actuaries Institute (Australia); Wikipedia — 1988~1992년 손실 규모, 네임의 수와 개인별 피해, 재건과 갱생 계획, 에퀴타스와 버크셔 해서웨이
- 캘리포니아 FAIR 플랜 / FAIR 플랜은 레드라이닝에 어떻게 맞섰나 · Wikipedia; Federal Reserve Bank of Chicago — 레드라이닝과 1968년 FAIR 플랜의 도입, 신규 인수 중단의 배경, 계약 건수와 담보 노출의 증가
- 영국 대법원 기업휴지보험 시험소송 판결 / 레너드 대 네이션와이드(5th Cir. 2007) / 카트리나 / TRIA · Financial Conduct Authority (UK); U.S. Court of Appeals for the Fifth Circuit; Wikipedia — 2021년 대법원 판단, 레너드 사건의 지급액과 인정된 풍해, 동시·순차 원인 면책 조항, 카트리나 총 피해액
- 유전정보차별금지법(GINA) / 콜로라도 SB21-169 · National Human Genome Research Institute; Colorado Division of Insurance — GINA의 적용 범위와 생명·장애·장기요양 보험이 빠진 한계, 콜로라도의 알고리즘 부당차별 시험 의무와 기한
- 국민건강보험 / 국민연금 / 고용보험 / 메리츠화재해상보험 / 대한생명 · 한국어 위키백과 — 1963년 의료보험법과 1964년 산재보험 시행, 1977·1989·1998·2000년 건강보험의 확대와 통합, 연금의 단계적 확대, 1922년 조선화재해상보험과 1946년 대한생명
- 실손의료보험 개혁 / 2024년 건강보험 보장률 / 노인장기요양보험 통계 / 2024년 보험사기 적발실적 · 금융위원회; 보건복지부·국민건강보험공단; 보험연구원·금융감독원 — 2024년 말 실손보험 계약 수와 비급여 부담액, 2024년 보장률과 총 진료비 구조, 장기요양 인정자 수, 보험사기 적발금액과 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