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읽는 데 약 29분

질소 비료의 역사

캐서 쓰던 질소를 공기에서 만들기까지, 그리고 같은 배관이 폭약으로도 갈라진 이야기

마트 진열대의 쌀 한 포대, 식빵 한 봉지, 달걀 한 판. 이 안에 든 단백질에는 예외 없이 질소가 들어 있어요. 질소가 없으면 단백질도 없고, 단백질이 없으면 몸을 만들 재료가 없어요. 그런데 그 질소가 어디에서 왔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밭도 아니고 두엄더미도 아니고, 커다란 압력 용기 안에서 공기를 눌러 만든 것인 경우가 많아요.

연구자들은 지금 우리가 먹는 방식과 지금의 농법을 그대로 둔다고 할 때, 세계 인구의 40~50%가 이렇게 만들어진 질소에 기대어 산다고 추정해요. 스밀은 2000년 기준 40%로, 에리스만 등은 2008년 48%로 계산했어요. 품종 개량과 관개, 기계화가 함께 작용해서 질소비료만의 몫을 떼어내기가 원리적으로 어렵거든요. 그러니 이건 확정된 값이 아니라 추정이에요. 다만 대략 인류의 절반쯤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어요.

그런데 공기에서 질소를 뽑아내는 그 공장은, 문을 열자마자 다른 쪽으로도 배관을 냈어요. 같은 원료가 밭으로도 가고 포탄으로도 갔거든요. 이 이야기는 그 갈림길에서 시작하지 않아요. 훨씬 앞, 사람들이 질소를 만들지 못해서 땅에서 캐다 쓰던 시절에서 시작해요.

한눈에 보는 연표

캐서 쓰던 질소

  • 1802 훔볼트, 페루 카야오에서 구아노의 비료 성질을 조사
  • 1879 태평양 전쟁 발발 — 아타카마의 초석을 두고 세 나라가
  • 1898 크룩스, "공기에서 질소를 뽑아내라"고 화학자들에게 촉구

만들어 쓰는 질소

  • 1909 하버와 르 로시뇰, 탁상 장치로 암모니아 합성에 성공
  • 1913 BASF 오파우, 세계 첫 산업적 암모니아 생산 시작

폭약으로 간 질소

  • 1914 해상봉쇄로 칠레초석이 끊기자 합성 질산이 그 자리를 메움
  • 1921 오파우 비료 사일로 폭발, 최소 560명 사망

밥으로 간 질소

  • 1953 볼로그, 쓰러지지 않는 일본 밀 노린10을 육종에 도입
  • 1966 국제미작연구소, 다수확 벼 IR8 발표
  • 1970 볼로그 노벨 평화상 — 같은 시기 녹색혁명 비판도 쌓이다

청구서

  • 2017 멕시코만 데드존, 관측 사상 최대 22,730 km²
  • 2021 비료 가격 80% 급등, 스리랑카는 화학비료를 끊었다가 철회

공기의 78%가 질소인데 왜 굶었을까

질소는 귀한 물질이 아니에요. 지구 대기의 약 78%가 질소 기체예요. 산소보다 훨씬 많고,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리 위에 무한정 떠 있어요. 그런데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질소가 모자라서 굶었어요. 이 모순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이에요.

질소가 왜 그렇게 중요하냐면, 단백질에도 DNA에도 반드시 들어가기 때문이에요. 몸을 만드는 재료 가운데 질소를 빼고 만들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요. 작물은 흙에서 질소를 끌어올리고, 사람은 그 작물을 먹어 질소를 얻어요. 그래서 수확이 끝난 밭에는 그만큼의 질소가 비어 있어요. 채워 넣지 않으면 다음 해 수확이 줄어요.

문제는 결합이에요. 공기 중의 질소는 원자 두 개가 삼중결합으로 단단히 묶여 있고, 그 결합을 끊는 데 945.41 kJ/mol이 들어요. 화학에서 손꼽히게 튼튼한 자물쇠예요. 대부분의 생물은 이걸 열지 못해요. 콩과식물 뿌리에 붙어사는 세균과 번개 정도가 예외죠. 이 자물쇠를 열어 암모니아나 질산처럼 생물이 쓸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일을 질소 고정이라고 불러요.

왜 하필 질소가 발목을 잡았을까요. 1840년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책 한 권을 냈어요. 식물은 흙에서 질소·인·칼륨 같은 무기 양분을 빨아들이며, 그중 가장 부족한 양분 하나가 수확량을 정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널빤지 길이가 제각각인 물통에는 가장 짧은 널빤지 높이까지만 물이 차죠. 대부분의 농경지에서 그 짧은 널빤지가 질소였어요. 그래서 질소만 채워 넣으면 수확량이 눈에 띄게 뛰었어요.

다만 리비히 본인은 질소 비료가 정말 필요한지를 두고 생전에 입장을 여러 번 바꿨어요. 대기 중 암모니아만으로 충분하다고 본 시기도 있었고, 나중에 다시 돌아왔어요. '비료 산업의 아버지'라는 별명과 달리, 이 문제에서는 그 자신도 오래 흔들렸어요.

농사의 역사는 그래서 질소를 어디서 구해 오느냐의 역사이기도 했어요. 가축 똥, 재, 콩과작물을 끼워 넣는 윤작. 전부 이미 땅 위를 돌고 있던 질소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는 방법이었어요. 총량을 늘리는 방법은 아니었죠.

총량을 늘리는 첫 번째 방법은 캐내는 것이었어요. 두 번째 방법은 공기를 직접 붙잡는 것이었고요. 이 이야기는 그 두 방법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이에요.

잠겨 있는 대기 중 질소와, 가장 짧은 널빤지가 수확량을 정하는 리비히의 물통 대기의 78%가 질소 삼중결합 — 잠긴 자물쇠 번개와 뿌리혹세균만 연다 질소 가장 짧은 널빤지가 수확량을 정한다

여기서 기억할 것 질소는 흔한데 잠겨 있습니다. 이 자물쇠를 누가 어떻게 여느냐가 이야기 전체의 축이에요.

새똥이 나라 살림의 60%를 대던 시절

1802년 11월,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페루의 항구 카야오에 도착했어요. 앞바다의 섬들에는 바닷새 배설물이 수천 년 동안 쌓여 굳은 층이 있었어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해안이라 씻겨 내려가지 않고 그대로 남은 거예요. 훔볼트는 그것을 조사해 유럽에 알렸어요. 이 물질이 구아노예요.

'발견'이라고 쓰면 틀려요. 안데스의 원주민들은 이미 수백 년 동안 구아노를 밭에 뿌리고 있었어요. 훔볼트가 한 일은 그 존재를 유럽의 시장에 연결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1840년 리비히의 책이 나오면서 유럽 농민들은 자기 밭에 무엇이 모자란지, 무엇을 사다 부어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수요가 폭발했어요.

구아노는 원시적인 거름이 아니라 고농도 질소 광물자원이었어요. 그리고 이 수익은 페루에게 국가 재정 그 자체였어요. 친차 제도의 구아노는 한때 페루 정부 연간 세입의 약 60%를 만들어냈어요.

그 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함께 적어야 해요. 1849년 페루 정부가 중국인 계약노동자 도입을 허가했고, 1874년까지 약 10만 명이 페루로 들어왔어요. 그중 3분의 2 이상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죽었어요. 친차 제도는 '지옥의 섬'이라고 불렸어요.

개별 기록도 남아 있어요. 1860년 시점에 그때까지 친차로 보내진 4,000명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계산이 남아 있어요. 정확한 인구 통계라기보다 당대의 추산이지만, 사망률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이것만으로도 짐작이 돼요. 1852년 무렵에는 채굴 인력의 3분의 2가 중국인 계약노동자였고, 태형과 폭동과 자살이 기록에 남아 있어요.

질소가 돈이 되자 나라들이 움직였어요. 1856년 8월 18일 미국은 구아노섬법을 만들었어요. 미국 시민이 주인 없는 섬에서 구아노를 발견하면 그 섬을 미국에 귀속시킬 수 있다는 법이에요. 이듬해까지 100개가 넘는 섬이 청구됐고 1903년까지 66곳이 미국령으로 인정됐어요. 이 법은 지금도 살아 있어요. 다만 그때 청구된 섬 대부분은 이후 정리돼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10곳이에요.

1864년에는 스페인이 친차 제도를 점령하면서 전쟁이 났어요. 새똥 섬을 두고 유럽의 옛 종주국이 함대를 보낸 거예요.

그런데 캐서 쓰는 자원에는 바닥이 있어요. 1870년대에 들어 친차 제도의 구아노는 사실상 동이 났어요. 파내는 소리에 바닷새가 섬을 떠났고, 새로 쌓이는 속도는 파내는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어요. 30년 남짓 만에 끝난 호황이었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질소는 그때도 첨단 자원이었어요. 다만 캐서 쓰는 자원이라 처음부터 바닥이 정해져 있었죠.

질소를 두고 전쟁이 났고, 한 나라는 바다를 잃었다

구아노가 바닥나자 다음 주자가 나왔어요. 칠레초석이에요. 아타카마 사막에 남아 있는 질산나트륨 광상인데, 이곳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물에 잘 녹는 질산염이 씻겨나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1872년 아타카마에 산타라우라와 라팔마 초석공장이 세워졌어요. 라팔마는 뒷날 움베르스토네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지게 돼요.

초석은 구아노보다 쓰임이 넓었어요. 밭에 뿌리면 비료고, 화약 공장으로 보내면 폭약 원료였어요. 이 두 가지 용도가 하나의 광상에 걸려 있었다는 사실이 이 사막의 운명을 정했어요.

1878년 2월 14일, 볼리비아 의회가 자국 해안에서 초석을 캐던 칠레계 회사에 퀸틀당 10센타보의 세금을 물리기로 승인했어요. 액수만 보면 사소한 분쟁이에요. 그런데 이 세금이 도화선이 됐어요. 1879년 3월 1일 태평양 전쟁이 시작됐어요. 칠레 대 볼리비아·페루 동맹의 싸움이었고, 본질은 아타카마의 초석과 구아노 광상이었어요. 페루의 구아노 수출은 이미 1869년 57만 5,000톤에서 1873년 35만 톤 미만으로 주저앉은 뒤였어요.

전쟁은 5년을 끌었어요. 사망자는 동맹군 약 2만 5,000명, 칠레 2,425~2,791명으로 집계돼요. 1883년 10월 20일 앙콘 조약으로 페루는 가장 부유한 초석 산지 타라파카를 칠레에 넘겼어요. 이듬해 발파라이소 협정으로 볼리비아는 해안 전체를 잃었어요. 볼리비아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바다가 없는 나라예요.

승자가 손에 넣은 것은 그냥 사막이 아니었어요. 1883년 무렵 칠레는 세계 질소 공급의 약 80%를 차지하게 됐어요. 세계의 밭과 세계의 화약이 한 나라의 사막 하나에 매달린 상태가 된 거예요. 유럽의 어느 농민이 밀을 얼마나 거두느냐가, 남미 서해안의 국경선과 항구 통제권에 걸려 있었어요.

이 구조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어요. 광상은 유한하고, 산지는 지구 반대편에 있고, 그 사이의 바닷길은 함대를 가진 쪽이 끊을 수 있었어요. 질소가 지정학이 된 것은 20세기의 일이 아니라 19세기의 일이었어요.

구아노에서 칠레초석으로 옮겨간 세계 질소 공급과 1879년 전쟁의 결과 구아노 — 페루 1879 전쟁 칠레초석 — 칠레 1870년대 구아노 고갈 1883년 세계 질소의 80% 볼리비아, 해안 상실

여기서 기억할 것 지도 위에 그어진 국경선 하나가 질소 때문에 움직였습니다. 다음 장의 발명이 지우게 될 판이 여기서 완성돼요.

1898년, 한 화학자가 밀의 만기일을 예고했다

1898년, 윌리엄 크룩스가 영국과학진흥협회 회장 취임 연설에 섰어요. 그는 밀을 먹는 민족이 1930년대에 식량이 바닥날 것이라고 경고했어요. 경작할 수 있는 땅은 거의 다 썼고, 남은 질소원은 유한하다는 계산이었어요. 그리고 화학자들에게 요구했어요. 공기에서 질소를 뽑아내는 방법을 찾으라고요.

파국 예언이 실제로 기술을 불러낸 드문 사례예요. 다만 크룩스가 처음은 아니었어요. 대기 중 질소를 붙잡으려는 시도는 이미 진행 중이었어요.

첫 번째가 프랑크-카로법이에요. 독일 화학자 아돌프 프랑크와 니코뎀 카로가 1895년부터 1899년 사이에 완성한 방법인데, 탄화칼슘을 약 1,000℃에서 질소와 반응시켜 칼슘시안아미드를 만들어요. 세계적으로 상업화된 최초의 공중질소 고정법이었어요. 상품명은 석회질소였고, 실제로 밭에 뿌려졌어요.

두 번째가 비르켈란-에위데법이에요. 1903년 노르웨이의 크리스티안 비르켈란과 삼 에위데가 실용화했어요. 발상은 번개를 흉내 내는 것이었어요. 전기 아크로 공기를 3,000℃ 이상 가열하면 질소와 산소가 붙어 일산화질소가 되고, 그것을 산화·흡수시키면 질산이 나와요.

원리는 우아했지만 청구서가 문제였어요. 질산 1톤을 만드는 데 약 15 MWh가 들었어요. 이 방식으로 공장을 돌리려면 전기가 거저에 가까워야 했어요. 그래서 노르웨이의 노토덴과 류칸, 그러니까 수력발전소 바로 옆에 지었어요. 전기가 싼 자리에서만 성립하는 기술은 세계의 밭을 감당할 수 없어요. 이 방식은 1910~1920년대에 밀려났어요.

두 방법 모두 공기를 원료로 쓰는 데는 성공했어요. 그런데 둘 다 우회로였어요. 하나는 탄화칼슘이라는 중간 물질을 만들어야 했고, 다른 하나는 발전소를 통째로 붙여야 했어요. 남은 길은 질소와 수소를 직접 붙여 암모니아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 반응이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어요. 온도를 올리면 반응은 빨라지는데 만들어진 암모니아가 도로 깨지고, 온도를 낮추면 반응이 기어갔어요. 남은 수단은 압력이었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문제는 이미 정확히 제기돼 있었어요. 다음 장은 그 문제를 푼 사람과, 푼 것을 공장으로 옮긴 사람의 이야기예요.

탁상 위 장치와 공장 사이의 4년

1909년 여름, 프리츠 하버와 조수 로베르트 르 로시뇰이 탁자 위에 올려놓을 만한 크기의 장치로 암모니아를 연속으로 뽑아내는 데 성공했어요. 조건은 약 500℃, 200기압, 오스뮴 촉매였어요. 생산 속도는 시간당 약 125mL. 유리병 하나를 채우는 데도 한참 걸리는 양이에요. BASF 사람들 앞에서 이걸 시연했고, 회사는 산업화를 결정했어요.

125mL가 왜 사건이냐면, 그때까지 아무도 이 반응을 쓸모 있는 속도로 돌리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200기압을 견디는 장치를 만든 사람은 르 로시뇰이었어요. 그는 하버의 특허에 이름이 올라 있고 로열티도 받았지만, 노벨상은 하버 혼자 받았어요.

촉매도 갈아야 했어요. 오스뮴과 우라늄은 희귀하고 비쌌어요. BASF의 알빈 미타슈가 1909년부터 값싼 철 기반 촉매를 체계적으로 찾기 시작했어요. 시험 횟수는 자료마다 수천 회에서 수만 회까지 다르게 인용되니 숫자를 못 박기는 어려워요. 확실한 것은 결과예요. 산화철에 소량의 칼륨·칼슘·알루미늄·규소 산화물을 섞은 그 조성은 지금까지도 거의 그대로 쓰이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다른 사람의 몫이에요. 카를 보슈가 맡은 것은 '된다'를 '공장이 된다'로 바꾸는 일이었어요. 실험실에서 200기압을 잠깐 견디는 것과, 공장에서 몇 달을 쉬지 않고 견디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보슈 팀은 반응기 구조를 새로 짰고, 그만한 압력을 계속 만들어낼 압축기를 만들었고, 수소를 대량으로 공급할 계통을 붙였어요.

1913년, BASF의 오파우 공장에서 세계 첫 산업적 암모니아 생산이 시작됐어요. 이듬해에는 하루 20톤에 이르렀어요. 초기 생산능력은 자료마다 하루 20톤에서 40톤까지 다르게 적히니 대략 하루 수십 톤으로 읽으면 돼요. 시간당 125mL에서 공장 가동까지 4년, 거기서 다시 한 해 만에 그 규모였어요. 이 4년이 20세기 식량사의 진짜 공백이에요.

지금의 공정도 뼈대는 그대로예요. 450~550℃, 150~250 bar에서 돌리고, 기체가 한 번 통과할 때 암모니아로 바뀌는 비율은 약 15%밖에 안 돼요. 나머지는 다시 돌려보내요. 그렇게 재순환을 반복하면 전체 전환율이 약 97%까지 올라가요. 한 번에 다 하지 않고 계속 되돌리는 설계 덕분에, 반응이 절반도 진행되지 않는 조건에서 공장이 돌아가는 거예요. 그 되돌림을 공장 규모로 쉬지 않고 밀어줄 압축기를 만든 것이 보슈 팀이었어요.

하버가 증명한 것은 반응이고, 보슈가 증명한 것은 공장이에요. 두 사람을 뭉뚱그리면 화학공학의 절반이 사라져요. 노벨상도 따로 받았어요. 하버는 암모니아 합성으로 1918년도 화학상 수상자가 됐고 실제 수여는 1919년에 이뤄졌어요. 보슈는 1931년에 프리드리히 베르기우스와 함께 고압화학 방법의 개발로 화학상을 받았어요. 13년 차이이고, 상의 사유도 서로 달라요.

여기서 기억할 것 발명과 산업화는 다른 일이고 다른 사람의 일이었어요. 이 구분을 놓치면 다음 장의 갈림길도 안 보입니다.

같은 암모니아가 밭으로도 가고 포탄으로도 갔다

하버-보슈법이 만드는 것은 암모니아예요. 암모니아 자체도 비료로 쓰지만, 이야기의 갈림길은 그다음에 있어요.

1902년 빌헬름 오스트발트가 공정 하나를 특허로 등록했어요. 암모니아를 백금 촉매 위에서 산화시켜 질산으로 바꾸는 방법이에요. 이 공정은 특허만 있고 오래 놀았어요. 원료인 암모니아가 비쌌으니까요. 그러다 1913년 오파우에서 값싼 암모니아가 쏟아지기 시작하자 비로소 경제성이 붙었어요. 그 순간 완결된 경로 하나가 생겼어요. 공기 → 암모니아 → 질산.

질산은 두 곳으로 가요. 한쪽에는 질산암모늄 같은 비료가 있고, 다른 쪽에는 TNT와 니트로글리세린 같은 폭약이 있어요. 같은 분자가 어느 배관을 타느냐만 달라요. 분기점은 화학이 아니라 배관이었어요.

1914년 영국의 해상봉쇄로 독일의 칠레초석 수입이 끊겼어요. 앞 장에서 본 그 아타카마의 초석이에요. 화약 원료인 질산을 수입에 의존하던 독일은 합성 암모니아를 오스트발트법으로 질산으로 바꿔 그 구멍을 메웠어요. 봉쇄는 비료 공급도 함께 끊었고, 남아 있던 재고마저 탄약 생산으로 돌려지면서 독일 농업 생산이 무너지는 데 한몫했어요. 밭으로 갈 질소가 포탄으로 갔다는 뜻이에요.

오파우 하나로는 모자랐어요. 1916년 5월 25일 독일 중부 로이나에 두 번째 대형 암모니아 공장 건설이 시작됐어요. 폭약 수요가 기존 생산능력을 넘어선 것이 이유였고, 프랑스 항공기의 항속거리 밖이라는 점이 입지 선정의 근거였어요. 1917년 4월 첫 암모니아 탱크차가 공장을 떠났어요.

여기서 한 번 멈춰야 해요. '이 기술이 없었다면 독일은 몇 해 안에 탄약이 떨어져 전쟁이 일찍 끝났을 것'이라는 문장이 아주 널리 인용돼요. 그런데 이건 사료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반사실적 해석이에요. 학술 문헌에서도 '그렇게 말해져 왔다'는 형태로 조심스럽게 제시되는 경우가 많아요. 확인되는 것은 두 가지까지예요. 봉쇄로 칠레초석이 끊겼다는 것, 그리고 독일이 합성 질산으로 그것을 대체했다는 것.

비료와 폭약이 같은 물건이라는 사실은 전선이 아니라 공장 마당에서 증명됐어요. 1921년 9월 21일 오전 7시 32분, 오파우 공장의 사일로에서 황산암모늄과 질산암모늄을 섞은 비료가 폭발했어요. 저장돼 있던 4,500톤 가운데 약 10%가 터졌어요. 최소 560명이 죽고 약 2,000명이 다쳤어요. 크레이터는 90×125m에 깊이 19m였고, 폭음은 300km 넘게 떨어진 뮌헨과 프랑스 북동부에서도 들렸어요. 원인은 굳어버린 비료 더미를 다이너마이트로 풀던 작업 관행이었어요.

질산암모늄은 질소가 34%인 비료예요. 동시에 경유와 섞으면 ANFO라는 폭약이 되고, 이것이 북미 폭약 사용량의 80%를 차지해요. 비료 창고와 탄약고가 화학적으로 같은 물건을 쌓아두고 있는 셈이에요.

다행히 오늘날 세계 질소비료의 주력은 이쪽이 아니에요. 1922년 보슈와 빌헬름 마이저가 암모니아와 이산화탄소로 요소를 만드는 공정을 특허 등록했어요. 요소는 고체이고 폭발하지 않으며 질소 함량이 46%로 흔히 쓰는 고체 질소비료 중 가장 높아요. 1828년 프리드리히 뵐러가 무기물에서 합성해 생기론을 무너뜨렸던 바로 그 물질이기도 해요.

공기에서 온 질소가 질산에 이르러 밭과 폭약으로 갈라지는 배관도, 그리고 이 배관과 이어지지 않은 염소가스 하버-보슈법 → 암모니아 오스트발트법 → 질산 비료로 폭약으로 염소가스 소금물 전기분해 — 무관

여기서 기억할 것 이 이야기의 심장입니다. 갈라진 것은 물질이 아니라 배관이었고, 그 사실은 공장 마당에서 먼저 드러났어요.

프리츠 하버에게 일어난 일들

이 장은 평가 없이 일어난 일과 날짜만 적을게요.

1911년, 하버는 베를린 달렘의 카이저빌헬름 물리화학·전기화학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했어요. 이 연구소는 뒷날 1차 대전 독가스 연구의 본부가 됩니다.

1915년 4월 22일 오후 5시경, 2차 이프르 전투에서 독일군이 6.5km 전선에 실린더 5,730개로 염소가스 168 long ton, 그러니까 171톤을 방출했어요. 하버가 이 작전을 제안하고 설치를 감독했어요. 오토 한, 제임스 프랑크, 구스타프 헤르츠가 함께 있었어요. 그날의 사상자 수는 자료마다 크게 엇갈려서 어느 숫자도 확정해서 적기 어려워요.

여기서 화학을 정확히 나눠야 해요. 그날 쓰인 염소가스는 소금물을 전기분해할 때 나오는 물질이에요. 하버-보슈법과는 원료도 공정도 아무 관계가 없어요. 앞 장에서 본 폭약 경로는 암모니아에서 질산으로 가는 쪽이고, 염소는 그 배관에 아예 붙어 있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하버-보슈법이 독가스를 만들었다'는 말은 화학적으로 틀린 문장이에요. 정확한 문장은 하버라는 사람이 두 가지 일을 다 했다는 것까지예요.

1915년 5월 2일, 클라라 임머바르가 베를린 달렘 자택 정원에서 남편의 군용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하버가 이프르에서 돌아온 직후였어요. 그는 1900년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독일 여성 최초로 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화학자였어요.

흔히 '남편의 독가스 개발에 항의한 자살'로 소개되지만, 유서가 없고 정황 기록도 부실해서 동기는 확정되지 않았어요. 화학전에 대한 반대라는 해석, 학자로서의 길이 막힌 결혼생활의 좌절이라는 해석, 알 수 없다는 입장이 모두 병존해요. 당시 지역 신문조차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적었어요.

1918년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하버가 결정됐고, 실제 수여는 1919년에 이뤄졌어요. 사유는 암모니아 합성이었어요. 화학무기 프로그램을 지휘한 인물에게 상을 준다는 비판이 있었고, 노벨위원회는 암모니아 합성이 인류에 가장 큰 이익을 주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어요.

1933년 10월 1일, 하버는 나치의 반유대 조치 속에 연구소장직을 사임했어요. 1934년 1월 29일 스위스 바젤의 호텔에서 심부전으로 죽었어요. 65세였어요. 죽기 직전 그는 팔레스타인 레호보트의 시프 연구소 소장직을 수락한 상태였어요.

그가 1917년에 세운 해충방제 연구 조직에서 살충용 시안화물 제제가 나왔고, 그 계보에서 갈라져 나온 제품이 치클론 B예요. 하버 본인이 만든 것은 아니에요. 치클론 B는 1942년부터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를 비롯한 절멸수용소의 가스실에서 사람을 죽이는 데 쓰였어요.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사람은 약 110만 명이고, 그 가운데 약 90만 명은 도착 직후 가스실에서 살해된 유대인이었어요. 하버는 8년 전에 죽은 뒤였어요. 그의 이복누이의 딸 힐데 글뤽스만과 그 가족은 강제수용소에서 죽었어요. 1945년, 치클론 B를 친위대에 공급한 회사의 브루노 테슈와 카를 바인바허는 영국 군사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됐어요. 사람에게 쓰일 것을 알면서 넘겼다는 이유였어요.

여기까지가 일어난 일이에요.

여기서 기억할 것 기술의 쓸모와 만든 사람의 행적은 따로 적어야 합니다. 섞으면 둘 다 부정확해져요.

노벨 평화상과 노벨 화학상이 한 밥상 위에 있다

질소비료만 많이 주면 수확이 늘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재래종 밀과 벼에 질소를 많이 주면 키가 훌쩍 자라고 이삭이 무거워져서 그대로 쓰러져요. 비료만으로는 벽에 부딪히는 거예요.

1944년 7월, 노먼 볼로그가 록펠러재단 사업으로 멕시코에 도착해 밀 연구를 시작했어요. 그때 멕시코는 밀 소요량의 절반을 수입하고 있었어요. 1943년의 일이에요. 이 나라는 1956년에 자급을 이뤘고 1964년에는 밀을 연 50만 톤 수출했어요.

열쇠는 키였어요. 1953년 볼로그는 일본의 반왜성 밀 품종 노린10을 도입해 교배에 쓰기 시작했어요. 이나즈카 곤지로가 육성한 품종인데, 키가 작아서 이삭이 무거워져도 쓰러지지 않았어요. 비료를 실컷 줄 수 있게 된 거예요. 반왜성 품종과 합성 질소비료는 따로 쓸 수 없는 한 세트예요.

벼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어요. 1966년 국제미작연구소가 IR8을 발표했어요. 비료를 주지 않아도 ha당 약 5톤, 최적 조건에서는 약 10톤을 냈어요. 재래종의 약 10배라고 소개됐는데, 이 배수는 어떤 재래종과 견주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그대로 받기는 어려워요.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값은 따로 있어요. 아시아의 벼 수확량은 1960년대 ha당 약 2톤에서 1990년대 중반 약 6톤으로 올라갔어요. 1968년 3월 8일, 미국 국제개발처 처장 윌리엄 가우드가 이 흐름에 '녹색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1970년 볼로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어요. 그 무렵 인도의 밀 수확량은 1965년 1,230만 톤에서 1970년 2,010만 톤으로 늘어 있었고, 파키스탄은 460만 톤에서 730만 톤이 됐어요. 인도의 밀 수확량은 2000년에 7,640만 톤에 이릅니다.

볼로그에게는 '10억 명을 굶주림에서 구했다'는 말이 늘 따라붙어요. 이 숫자는 1997년 한 기사에서 나온 추정이고, 집계된 결과가 아니라 투영이에요. 검증할 수 있는 것은 위의 수확량 통계까지예요.

같은 무게로 적어야 할 것이 있어요. 1970~1980년대에 걸쳐 녹색혁명에 대한 비판이 쌓였어요. 첫째, 녹색혁명은 종자 하나가 아니라 묶음이었어요. 반왜성 품종은 질소를 넉넉히 줘야 제 값을 하고, 그 질소가 작물로 가려면 물을 제때 대야 하고, 거기에 농약까지 따라붙어요. 그러니까 종자만 사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고 비료·농약·관개를 한꺼번에 갖춰야 했어요. 네 가지 값을 동시에 치를 수 있느냐에서 결과가 갈렸고, 그 묶음을 살 돈이 없는 소농은 처음부터 배제됐어요. 둘째, 1980년 무렵 필리핀에서는 바로 그 돈 문제를 풀겠다고 만든 신용 프로그램이 부유한 지주에게 이익을 주고 가난한 농민을 부채에 빠뜨렸어요. 셋째, 몇 개 품종에 몰리는 단작화로 생물다양성이 줄었어요. 넷째, 농약이 하천 생태계를 해쳤고, 질소비료 과다 사용은 아산화질소 배출을 늘렸어요. 이 마지막 항목은 다음 장에서 다시 만나게 돼요.

수확량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고, 늘어난 몫이 어디로 갈지를 종자가 정해주지는 않았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두 문장 중 하나만 남기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게 돼요.

여기서 기억할 것 화학상이 만든 질소와 평화상이 만든 품종은 한쪽만으로는 쓸모가 없었어요. 그리고 그 묶음에는 값이 붙어 있었죠.

뿌린 질소의 절반은 밭 밖으로 나간다

지금 세계는 질소를 얼마나 쓸까요. 2023년 세계 농업용 비료 사용량은 영양분 기준으로 1억 9,000만 톤이었고, 그중 질소가 1억 1,200만 톤으로 58%를 차지했어요. 가장 많이 쓰는 나라는 중국 1,870만 톤, 인도 1,190만 톤, 미국 910만 톤 순이에요.

이 숫자들을 읽을 때 함정이 하나 있어요. 1억 1,200만 톤은 순수한 질소 성분의 무게예요. 제품 무게로 세면 훨씬 커져요. 요소는 질소가 46%뿐이고 질산암모늄은 34%니까요. 여기에 또 다른 축이 있어요. 세계 암모니아 생산량은 2023년 2억 4,000만 톤으로 집계되는데, 이건 암모니아 분자 자체의 무게 기준이에요. 이 값은 자료마다 크게 갈려요. 생산량으로 세느냐 생산능력으로 세느냐, 암모니아 무게로 세느냐 질소 성분량으로 세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세 가지 기준을 한 문단에 섞으면 반드시 앞뒤가 안 맞는 문장이 나와요.

밭에 뿌린 질소가 다 작물로 가지도 않아요. 세계 작물의 질소이용효율은 50%에 못 미쳐요. 절반 이상이 다른 데로 새어나간다는 뜻이에요. 질산염 형태로 물에 녹아 지하수로 빠지거나, 암모니아로 날아가거나, 미생물의 탈질 과정에서 아산화질소와 질소 기체가 돼요. 질산염은 흙 입자에 잘 달라붙지 않아서 특히 잘 씻겨 내려가요.

새어나간 질소가 강을 타고 바다에 닿으면 조류가 폭발적으로 번식해요. 그리고 그 사체를 분해하는 세균이 바닥의 산소를 다 써버려요.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저산소 구역, 데드존이 생기는 거예요. 멕시코만의 데드존은 2017년에 22,730 km²로 관측 사상 최대를 기록했어요. 원인이 되는 영양염의 약 70%가 미시시피강 유역에서 흘러들어요. 다만 데드존은 여름에 생겼다 사라지는 계절 현상이라 면적이 해마다 크게 달라져요. 2017년 수치는 최대 기록이지 평년값이 아니에요.

대기로 간 질소도 있어요. 아산화질소는 같은 질량의 이산화탄소에 견줘 온난화 잠재력이 약 300배예요. 정확한 값은 보고서마다 갱신되지만, 지금 이산화탄소와 메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온난화 기여 물질로 꼽혀요.

만드는 쪽의 청구서도 있어요. 국제에너지기구는 2021년에 낸 암모니아 기술 로드맵에서, 암모니아 생산이 세계 최종에너지 소비의 약 2%, 에너지 시스템 이산화탄소 배출의 1.3%를 차지한다고 집계했어요. 같은 보고서 기준으로 생산된 암모니아의 약 70%가 비료로 가고 나머지는 플라스틱·섬유·폭약 등으로 가요. 이 비중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잡히니 어느 기관의 몇 년도 집계인지를 같이 봐야 해요.

'행성 경계'는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선을 항목별로 그어 놓고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를 재 보는 평가 틀이에요. 2025년 갱신판에서 질소는 여전히 크게 초과된 항목으로 남았어요. 산업적·의도적 질소 고정의 안전 한계선은 연 62 Tg N인데 실제 값은 연 165 Tg N이에요. Tg는 테라그램이라는 단위인데, 1 Tg가 100만 톤이고 N은 질소 성분량 기준이라는 뜻이에요. 한계의 약 2.7배죠.

여기서 두 문장을 나란히 놓고 가야 해요. 지금의 식단과 지금의 농법을 그대로 두고 세계를 먹이려면 합성 질소를 빼기가 어려워요. 그리고 그 합성 질소가 지금 크게 초과된 행성 경계 항목이기도 해요. 둘 다 참이에요. 어느 한쪽만 들고 이 이야기를 하면 반드시 틀린 이야기가 돼요.

밭 단면으로 본 질소의 행방 — 작물이 흡수하는 몫과 대기·지하수·바다로 새어나가는 몫 뿌린 질소 100 작물 흡수 — 50% 미만 대기로 — 암모니아·아산화질소 질산염 → 지하수 데드존 — 멕시코만

여기서 기억할 것 이 기술의 성공과 그 청구서는 같은 사실의 앞뒤예요. 한쪽만 보면 지금의 논쟁이 통째로 이해되지 않아요.

공기에서 뽑는데도 지정학에서 자유롭지 않다

질소는 공기에서 오지만, 암모니아를 만들려면 수소가 필요해요. 그리고 그 수소는 대부분 천연가스에서 나와요. 가스는 원료이면서 동시에 고온·고압을 만드는 연료이기도 해요. 그래서 가스 가격이 오르면 비료 가격이 그대로 따라 올라요.

2021년에 그 일이 벌어졌어요. 세계 비료 가격이 한 해에 80% 뛰었어요. 유럽의 암모니아 공장들이 가스값을 감당하지 못해 감산했고, 2022년 2월 2일 러시아는 질산암모늄 수출을 일시 금지했어요. 세계은행이 2022년 5월 11일에 정리한 바로는, 가격은 그해 들어 5월까지 30%가 더 올라 요소가 2008년 최고치를 넘어섰어요. 이 수치는 어디까지나 2022년 5월 기준이에요. 그 뒤 가격은 내려왔으니 지금 값으로 옮겨 읽으면 틀려요.

왜 이렇게 흔들릴까요. 공급이 몇 나라에 몰려 있기 때문이에요. 2022년 5월 기준으로 러시아는 세계 요소 수출의 약 16%, 인산비료의 약 12%를 차지했고,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합치면 칼륨비료 수출의 약 5분의 2를 쥐고 있었어요. 공기에서 뽑아낸 비료조차 지정학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에요.

비료를 끊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준 사례도 있어요. 2021년 4월 스리랑카 정부가 화학비료와 농약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유기농 국가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어요. 6개월 만에 쌀 생산이 20% 줄어 자급이 무너졌고, 4억 5,000만 달러어치 쌀을 수입해야 했어요. 차 생산이 줄면서 4억 2,500만 달러를 잃었어요. 그해 11월 정책은 철회됐어요.

다만 이 조치가 스리랑카 경제위기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에요. 외환위기와 관광 붕괴, 감세가 함께 작용했어요. 인과를 하나로 줄이면 그것도 틀린 이야기가 돼요.

앞일을 맞힐 필요는 없어요. 대신 무엇을 보고 있으면 판이 움직이는 걸 먼저 알아챌 수 있는지만 정리해 볼게요.

첫째, 새는 절반이에요. 뿌린 질소의 절반 이상이 밭 밖으로 나간다는 말은, 뒤집으면 덜 뿌리고도 같은 수확을 얻을 여지가 그만큼 있다는 뜻이에요. 언제 어떤 형태로 얼마나 주느냐를 정밀하게 맞추는 쪽과, 질소를 덜 흘리는 품종을 만드는 쪽에서 연구가 진행돼요.

둘째, 만드는 방식이에요. 수소를 천연가스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전기로 물을 분해해 얻으면 이산화탄소 배출이 크게 줄어요. 이른바 녹색 암모니아예요. 앞에서 전기값 때문에 밀려난 비르켈란-에위데법과 헷갈리기 쉬운데, 둘은 다른 방식이에요. 그쪽은 전기로 공기를 3,000℃까지 달궈 질소를 직접 산화시켰고, 녹색 암모니아는 전기를 수소 만드는 데만 쓰고 질소와 붙이는 일은 여전히 하버-보슈법에 맡겨요. 전기가 감당해야 할 몫이 훨씬 작아진 거예요. 다만 지금 암모니아 공장의 표준은 여전히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얻는 방식이에요.

셋째, 값과 국경이에요. 가스 가격과 수출 통제, 그리고 그 충격이 어느 나라 밥상에 먼저 닿는지. 넷째, 숫자의 기준이에요. 성분량인지 제품 무게인지, 몇 년도 집계인지, 추정인지 측정인지. 이 주제는 유난히 기준이 뒤섞이기 쉬워요.

마지막으로 한 장면만 덧붙일게요. 아타카마 사막의 초석 도시 움베르스토네와 산타라우라는 1960년에 문을 닫았어요. 합성 질소가 값싸게 쏟아진 데다 대공황이 겹치면서, 한때 세계 질소의 80%를 대던 산업이 통째로 주저앉은 거예요. 여기서도 원인은 하나가 아니었어요. 사막에 남은 그 유령도시는 200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어요. 기술이 바뀌면 지정학의 판 하나가 통째로 값을 잃는다는 것이 거기 그대로 남아 있어요.

여기서 기억할 것 예측이 아니라 관전법이에요. 새는 절반, 만드는 방식, 값과 국경, 그리고 숫자의 기준 — 이 넷만 보면 됩니다.

🤔 흔한 오해

✕ 오해

하버-보슈법이 독가스를 만들었다. 비료 기술이 곧 화학무기 기술이다.

✓ 사실

다른 물질, 다른 공정이에요. 하버-보슈법은 공기와 수소로 암모니아를 만들고, 그 암모니아가 오스트발트법을 거쳐 질산이 되면 비료도 되고 폭약도 돼요. 이 경로는 실제로 존재해요. 그런데 하버가 1915년 이프르에서 쓴 것은 염소가스로, 소금물 전기분해에서 나오는 완전히 다른 물질이에요. '하버라는 사람'이 두 가지를 다 했을 뿐, 하버-보슈법이 독가스를 만든 것은 아니에요.

✕ 오해

하버-보슈법 덕분에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살아 있다 — 확정된 사실이다.

✓ 사실

추정치예요. 에리스만 등은 2000년 44%, 2008년 48%로 계산했고 스밀은 2000년 기준 40%로 봤어요. 스튜어트 등은 수확량 증가분의 30~50%를 합성비료 몫으로 잡았고요. 품종 개량·관개·기계화·농법 개선이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에 질소비료만의 몫을 떼어내는 일은 원리적으로 어렵고, 저자들 자신이 그 한계를 밝히고 있어요. '40~50%로 추정된다'가 정확한 표현이에요.

✕ 오해

클라라 임머바르는 남편의 독가스 개발에 항의해 자살했다.

✓ 사실

죽음은 사실이에요. 1915년 5월 2일, 하버가 이프르에서 돌아온 직후, 남편의 군용 권총으로요. 하지만 동기는 확정되지 않았어요. 유서가 없고 정황 기록도 부실해요. 화학전에 대한 반대라는 해석, 학자로서의 경력이 막힌 결혼생활의 좌절이라는 해석, 알 수 없다는 입장이 모두 병존해요. 당시 지역 신문조차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적었어요.

✕ 오해

구아노와 칠레초석은 원시적인 거름이었고, 합성 비료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밀려났다.

✓ 사실

둘 다 고농도 질소 광물자원이었고, 그것을 차지하려고 국제 전쟁이 두 번 났어요. 1864년 친차 제도 전쟁과 1879년부터 1884년까지의 태평양 전쟁이에요. 페루 정부 세입의 약 60%가 구아노에서 나왔고, 볼리비아는 초석 전쟁에서 져 지금까지 내륙국이에요. 미국은 1856년 구아노섬법으로 100개가 넘는 섬을 청구했고 그 법은 아직 살아 있어요. '밀려났다'보다는 '식민지 노동과 전쟁으로 떠받쳐진 체제가 기술 하나로 무의미해졌다'가 사실에 가까워요.

💡 그래서 한마디로

질소는 대기의 78%를 차지하면서도 삼중결합에 묶여 있어서, 인류는 오랫동안 그것을 만들지 못하고 캐서 썼어요. 페루의 구아노와 아타카마의 칠레초석이 그 자원이었고, 그것을 차지하려고 전쟁이 두 번 났고, 볼리비아는 그 결과 바다를 잃었어요. 1909년 하버가 반응을 증명하고 1913년 보슈가 공장을 증명하면서 공기에서 질소를 뽑는 길이 열렸는데, 같은 암모니아가 오스트발트법을 거쳐 질산이 되면 비료도 되고 폭약도 됐어요. 반왜성 품종과 짝을 이뤄 수확량을 끌어올린 그 질소는 오늘날 뿌린 양의 절반 이상이 밭 밖으로 새어나가며, 크게 초과된 행성 경계 항목이기도 해요.

참고 자료

본문의 연도와 숫자는 아래 자료를 근거로 씁니다. 틀린 곳을 찾으시면 알려주세요.

  1. 질소 (Nitrogen) · Wikipedia (영문) — 대기의 약 78%, 삼중결합 해리에너지 945.41 kJ/mol, 1772년 러더퍼드의 최초 분리
  2. 유스투스 폰 리비히 · Wikipedia (영문) — 1840년 저서와 최소량의 법칙, 질소 비료 필요성에 대한 입장 변화
  3. 구아노 (Guano) · Wikipedia (영문) — 1802년 훔볼트의 카야오 조사, 1870년 페루 수출 70만 톤 초과, 1852년 채굴 인력의 3분의 2가 중국인 계약노동자
  4. 쿨리 (Coolie) · Wikipedia (영문) — 1849~1874년 약 10만 명의 페루 유입과 3분의 2 이상 사망, '지옥의 섬' 친차, 1860년 4,000명 중 생존자가 없다는 당대의 계산
  5. 구아노섬법 (Guano Islands Act) · Wikipedia (영문) — 1856년 8월 18일 제정, 100개 이상 청구·1903년까지 66곳 인정·현재 남은 것은 10곳, 법은 지금도 유효
  6. 친차 제도 전쟁 · Wikipedia (영문) — 스페인의 친차 제도 점령, 이 섬들이 페루 정부 연 세입의 약 60%, 1879년 4월 페루와의 평화조약
  7. 태평양 전쟁 (초석 전쟁) · Wikipedia (영문) — 1878년 2월 14일 볼리비아의 10센타보 세금, 1879년 3월 1일~1884년 4월 4일, 페루 구아노 수출 57만 5,000톤(1869)→35만 톤 미만(1873), 앙콘 조약과 볼리비아의 내륙국화, 사망자 집계
  8. 질산 (Nitrate) — 1차 대전 국제 백과사전 · 1914-1918-online — 1883년 무렵 칠레가 세계 질소의 약 80% 생산, 영국 해상봉쇄와 시장 재편, '합성 질소가 없었다면 독일이 졌으리라고 말해져 왔다'는 조심스러운 서술 형태
  9. 움베르스토네·산타라우라 초석공장 · Wikipedia (영문) — 1872년 설립, 합성 질소와 대공황에 따른 붕괴, 1960년 폐쇄와 200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10. 윌리엄 크룩스 · Wikipedia (영문) — 1898년 영국과학진흥협회 회장 취임 연설의 경고와 대기 질소 고정 촉구 (연설 장소는 확인되지 않음)
  11. 프랑크-카로법 · Wikipedia (영문) — 1895~1899년 개발, 탄화칼슘을 약 1,000℃에서 질소와 반응, 세계적으로 쓰인 최초의 상업적 공중질소 고정법
  12. 비르켈란-에위데법 · Wikipedia (영문) — 1903년 실용화, 전기 아크 3,000℃ 이상, 질산 1톤당 약 15 MWh, 1910~1920년대에 하버-보슈법에 밀림
  13. 하버법 (Haber process) · Wikipedia (영문) — 1909년 여름 하버·르 로시뇰의 시간당 약 125mL(약 500℃·200기압), 1909년 미타슈의 철 촉매, 1913년 오파우 첫 산업 생산과 1914년 하루 20톤, 현대 조건 450~550℃·150~250 bar·1회 통과 약 15%·재순환 포함 약 97%
  14. 로베르트 르 로시뇰 · Wikipedia (영문) — 1908~1909년 하버와의 공동 연구, 200기압에서 작동하는 탁상 장치 설계, 하버 특허 등재와 로열티 수령, 노벨상은 공동 수상하지 않음
  15. 프리츠 하버 · Wikipedia (영문) — 1911년 연구소장 취임, 1915년 이프르 감독, 1918년도 노벨 화학상(1919년 수여), 1933년 10월 1일 사임, 1934년 1월 29일 바젤에서 사망
  16. 노벨상 논란 (Nobel Prize controversies) · Wikipedia (영문) — 하버의 1918년도 화학상이 화학무기 프로그램 지휘 이력 때문에 논란이 된 점, 위원회가 암모니아 합성을 '인류에 가장 큰 이익'으로 판단해 수여를 정당화한 점
  17. 카를 보슈 · Wikipedia (영문) — 1909~1913년 산업화, 오파우 첫 대형 공장, 1922년 보슈-마이저 요소 공정, 1931년 베르기우스와 공동 노벨 화학상(고압화학)
  18. 오스트발트법 · Wikipedia (영문) — 1902년 특허, 암모니아→질산 3단계, 1913년 하버-보슈 암모니아 공급 이후 경제성 확보
  19. 독일 봉쇄 (1914~1919) · Wikipedia (영문) — 봉쇄가 비료 공급을 끊었고 남은 재고가 탄약 생산으로 전용되어 독일 농업 생산 악화에 기여
  20. 로이나 공장 · Wikipedia (영문) — 1916년 5월 25일 착공, 폭약 수요가 기존 생산능력을 넘어선 것이 건설 이유, 프랑스 항공기 항속거리 밖이라는 입지, 1917년 4월 첫 출하
  21. 오파우 폭발 · Wikipedia (영문) — 1921년 9월 21일 오전 7시 32분, 저장 4,500톤 중 약 10% 폭발, 사망 최소 560명·부상 약 2,000명, 크레이터 90×125m·깊이 19m, 300km 밖 청취, 다이너마이트 작업 관행
  22. 질산암모늄 · Wikipedia (영문) — NPK 34-0-0, ANFO가 북미 폭약 사용량의 80%, 오파우·텍사스시티·톈진·베이루트 재해 사례
  23. 요소 (Urea) · Wikipedia (영문) — 질소 함량 46%로 상용 고체 질소비료 중 최고, 1922년 보슈-마이저 공정 특허, 1828년 뵐러의 합성과 생기론 붕괴
  24. 2차 이프르 전투 · Wikipedia (영문) — 1915년 4월 22일 오후 5시경 6.5km 전선에 실린더 5,730개로 염소 168 long ton(171톤) 방출, 하버의 제안·감독, 사상자 추정치 불일치
  25. 클라라 임머바르 · Wikipedia (영문) — 1900년 브레슬라우 대학 독일 여성 최초 화학 박사, 1915년 5월 2일 자살, 유서 없음·동기 해석 3가지 병존, 당시 지역 신문의 '이유를 알 수 없다' 보도
  26. The number of victims / Gas chambers — Auschwitz-Birkenau ·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국립박물관 — 아우슈비츠 희생자 약 110만 명 가운데 약 90만 명이 도착 직후 가스실에서 살해된 유대인, 약 20만 명은 기아·질병·강제노동·처형으로 사망. 치클론 B의 최초 살상 사용은 1941년 9월 3일 소련군 포로
  27. 합성 비료는 몇 명을 먹여 살릴까 · Our World in Data — 추정 범위 40~50%, 에리스만 등(2008) 2000년 44%·2008년 48%, 스밀(2004) 40%, 스튜어트 등(2005) 수확량 증가의 30~50%, 추정 방법의 한계
  28. How a century of ammonia synthesis changed the world (Nature Geoscience 1, 636–639) · Erisman, Sutton, Galloway 등 — Nature Geoscience, 2008년 10월 — 하버-보슈 질소에 의존하는 세계 인구 비율의 원 논문. 2000년 기준 44%, 2008년 기준 48%로 추정. 측정이 아니라 추정임을 저자들도 밝힘
  29. 녹색혁명 · Wikipedia (영문) — 1968년 3월 8일 가우드의 명명, 멕시코의 1943년 절반 수입→1956년 자급→1964년 연 50만 톤 수출, 1966년 IR8, 아시아 벼 수량 변화, 투입재 접근성·단작화·N2O 배출 비판
  30. 노먼 볼로그 · Wikipedia (영문) — 1944년 7월 멕시코 사업 시작, 1953년 노린10 도입, 1970년 노벨 평화상, '10억 명 구제'는 1997년 기사에서 나온 추정, 인도·파키스탄 밀 수확량 실측치
  31. Inorganic fertilizers 2002–2023 (FAOSTAT Analytical Brief) ·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 2025년 9월 — 2023년 질소 112 Mt, 인 41 Mt, 칼륨 38 Mt — 영양분 합계 191 Mt. 질소가 58%
  32. 암모니아 생산 (Ammonia production) · Wikipedia (영문) — 2023년 세계 생산 2억 4,000만 톤 (암모니아 중량 기준). 자료마다 생산량·생산능력, 암모니아 중량·질소 성분량 기준이 섞여 집계가 갈립니다
  33. 녹색 암모니아 (Green ammonia) · Wikipedia (영문) — 재생에너지 전기분해로 얻은 수소를 쓰는 녹색 암모니아의 정의와, 재래식 암모니아 생산이 내는 CO2 규모. 현재 생산 점유율은 문서에 없음
  34. 암모니아 기술 로드맵 · 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 2021년 10월 — 암모니아 생산이 세계 최종에너지 소비의 약 2%, 에너지 시스템 CO2 배출의 1.3%, 생산 암모니아의 약 70%가 비료용
  35. Global mean nitrogen recovery efficiency in croplands can be enhanced by optimal nutrient, crop and soil management practices · Nature Communications (PMC10505174), 2023년 — 세계 평균 질소회수효율 48%. 최적 관리 조합으로 78%까지 올릴 수 있다고 추정. 연구마다 40~48%로 갈림
  36. 질소 순환 · Wikipedia (영문) — 아산화질소가 CO2의 약 300배 온난화 잠재력이며 CO2·메탄에 이어 세 번째 기여 물질
  37. Gulf of Mexico 'dead zone' is the largest ever measured · 미국 해양대기청(NOAA), 2017년 8월 2일 — 2017년 8,776 제곱마일(22,730 km²)로 1985년 관측 시작 이래 최대. 종전 최대는 2002년 8,497 제곱마일
  38. Modification of Biogeochemical Flows — Planetary Health Check · Potsdam Institute for Climate Impact Research (PIK), 2025년 갱신판 — 의도적으로 고정된 질소의 안전 경계 연 62 Tg N, 실제 연 165 Tg N. 판마다 정의와 수치가 바뀌므로 판을 밝혀 쓸 것
  39. 비료 가격은 더 오래 높게 유지될 전망 · World Bank Blogs, 2022년 5월 11일 — 2021년 80% 상승과 2022년 1~5월 약 30% 추가 상승, 요소의 2008년 최고치 돌파, 러시아 요소 수출 약 16%·러시아+벨라루스 칼륨 약 5분의 2
  40. Sri Lanka's Organic Farming Experiment Went Catastrophically Wrong · Foreign Policy, 2022년 3월 5일 — 2021년 4월 금지 후 6개월 만에 쌀 생산 20% 감소, 4억 5,000만 달러 쌀 수입, 차 산업 손실 4억 2,500만 달러, 11월 부분 철회
  41. 2022~2023년 식량 위기 · Wikipedia (영문) — 2022년 2월 2일 러시아의 질산암모늄 수출 일시 금지와 비료 가격 기록적 상승